[사설] 소멸시효 상관없이 보험금 지급하라는 게 말이 되나

금융감독원이 소멸시효가 지났더라도 자살보험금을 무조건 지급해야 한다며 생명보험회사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금감원은 어제 “자살보험금에 대한 생명보험사의 소멸시효 주장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지급을 거부하거나 고의로 지연하고 있는 회사와 임직원들에 대해 엄정히 조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금감원의 이날 발표는 대법원이 지난 12일 자살에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이 1주일 뒤인 19일,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고 생보사들이 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올 2월 현재 자살 관련 미지급 보험금은 14개 생보사 2980건 2465억원이며, 소멸시효 경과건은 2314건(78%) 2003억원(81%)에 달한다.

금감원의 이 같은 강경방침은 이례적이다. 소멸시효와 관련한 서울중앙지법의 1심 판결이 나온 직후에 그 판결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감독지침을 밝힌 것이 그렇다. 금감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대법원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한 발언까지 쏟아냈다. 보도자료에는 “소멸시효와 관련한 하급 법원들의 판단이 엇갈리고는 있지만 대법원은(…)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함”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더구나 “대법원에서 민사상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금감원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대목은 대법원 판결까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특약에 관계된 소멸시효를 개인들이 모두 챙길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생보사들은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에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12일의 대법원 판결은 약관 해석만을 다룬 것으로 소멸시효 완성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멸시효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감독당국의 지시만 따르라는 것은 억지다. 아니 당국은 무슨 근거로 법에도 없는 지시를 내리는가. 보험사의 자산은 보험 계약자 전체의 돈이지 아무에게나 주라고 있는 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