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고은·박완서가 이런 작품도? 그들의 '괴작' 엿보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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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7
이은각 정독도서관장
탐서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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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운명’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헤아려보는 일은 책을 읽어 온 사람들의 몫이다. 책에서 얻은 지혜를 배경지식 삼아서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녹록지 않다. 모든 지식이 빠르게 해체되고 재편되는 오늘날의 사회 환경 속에서는 그 어떤 지식도 한 자리에 멈춰 서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어서다.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어제는 새로웠던 일도 오늘은 결코 새롭지 않다. 그래서 매일 서점에는 새로운 책이 쌓이고, 이제 더 이상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온라인 중고서점이나 헌책방을 아무리 뒤져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 바로 절판된 책들이다. 그래서일까. 세월이 흘러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잊힌 지 오래인 ‘절판 도서’를 나만이 읽는 재미를 놓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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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가 생애 마지막 전집에서 제외한 소설 《욕망의 응달》, 고은 시인의 프로필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일식》이란 소설도 있다. 또 지금의 김영하를 떠올린다면 상상하기 힘든 그의 첫 소설 《무협 학생운동》도 작가의 공식적인 작품 목록에는 들어 있지 않다. 책들엔 과연 이 작가들이 썼을까 싶을 정도로 기이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작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래서 더욱 매혹될 듯하다.
책의 역사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미국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전자논문 프로젝트 ‘구텐베르크-E’의 기획자)은 현대인의 고민 해결을 지적 유산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과거를 돌아보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살리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이다. 역경의 시기도, 영광의 순간도 다 지나가지만 책은 살아남는다. 절판된 책들의 다종다양한 과거를 회상하는 즐거움을 《탐서의 즐거움》을 통해 누려보자. (윤성근 지음, 모요사, 1만5000원)
이은각 < 정독도서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