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에비타 잠든 레콜레타 묘지공원은 '거대 박물관'

'남미의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
레콜레타 묘지공원에 있는 에바 페론의 무덤 / 박명화 여행작가 제공
한참을 걷다가 우연히 오래된 건물에 들어갔다. 작은 무대가 있는 내부에선 음식이나 주류를 팔고 있었다. 숯불에 구운 아사도, 밀가루 반죽 속에 고기나 채소를 넣고 구운 엠파나다가 보였다. 좌판에는 와인과 칵테일도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청년 라울은 탱크처럼 생긴 차를 타고 볼리비아나 페루 등 가난한 마을에 책을 기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세상은 넓지만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지. 난 그게 신경 쓰여”라고 말했다. 라울은 현실의 삶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배낭에 넣고 다니던 책 두 권을 기증했다.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누가 그 책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심하게나마 돕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다.

밖으로 나와 공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작은 광장에서는 아르헨티나 포크 음악이 흘렀다. 어딘가 가수 김광석의 분위기가 나는 곡도 있었다. 사람들은 전통 곡에 맞춰 춤을 췄고, 앉아 있던 여행객도 흥에 겨우면 술잔을 들고 일어나 함께 어울렸다. 라울의 말처럼 못 보고 지나쳤다면 많이 아쉬웠을 장면이 아닐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어느새 여행객의 가슴을 황홀함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산 텔모의 벼룩시장 판매대
폭발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공연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면서 꼭 보고 싶은 공연이 있었다. ‘난타’와 같은 비언어 형식의 공연 ‘푸에르타 부르타(Fuerza Bruta)’다. 대사 없이 몸짓과 소리, 음악 등으로 극의 역동성을 극대화한 공연이다. 제목은 ‘지독하게 행복하다’는 뜻을 가졌다. 감독은 아르헨티나 출신 뮤지컬 감독 디키 제임스. 소식을 듣고 시내로 나가 입장권을 샀다.

오후 9시에 시작되는 공연 당일,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은 파티에 온 듯 시끌시끌했다. 그럴 만했다. 모든 관객이 뛰면서 즐기는 스탠딩 공연이다. 공연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카메라 촬영도 괜찮다. 공연장에서 파는 맥주를 들고 관람해도 상관없다.
거리에서 탱고를 추는 이들 / 박명화 여행작가 제공
기다린 끝에 시작된 무대. 한시도 관객을 가만히 두지 않는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70분의 시간이 불타올랐다. 차가운 도심 속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며 뛰고 부수고 넘어진다. 무대의 시작은 객석의 중앙이지만 배우들은 어느새 관객들의 머리 위를 오간다. 중간에 물세례가 쏟아져도 관객의 환호성은 끝없이 이어지고 뜨거운 열기는 좀체 식지 않는다. 뜨거운 퍼포먼스와 반복적인 음악이 객석을 몰아의 경지로 몰아갔다. 밖에 나와서도 끝을 맺은 공연은 한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화려한 조명 속에 펼쳐진 거친 물의 흐름. 마치 어머니의 뱃속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이럴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루가 환상적으로 저물어갔다.

라라 여행작가·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 mynamelar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