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GO] 강아지공장 그 후…당신의 개는 생명입니까, 보증서입니까

'강아지 번식 공장' 공분 한 달

"'순종' 선호 버려야 '강아지 공장' 사라집니다"
순종 수요 ↑ 유전병 ↑ 펫숍·공장 공급 ↑ 악순환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저는 순수 한국인 혈통입니다. 보증서도 있습니다. 교육을 따로 안 받아도 될 만큼 머리가 좋고 애교도 많습니다. 성인으로 커도 키가 160cm를 넘지 않아 함께 살기에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개를 사람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풀어봤다. 사람은 피부색과 국적, 혈통이 다르다해도 차별받아선 안된다. 가문과 혈통에 따른 유전적 고유성을 쉽게 자랑하거나 폄하하지도 않는다. 흑인 노예 제도, 독일 나치의 인종 청소 등 잔혹했던 인종차별 역사 속에서 세운 인류애의 원칙 덕이다.그러나 동물은 여전히 예외다. 인류의 가장 오랜 벗이라는 개도 예외일리 없다. 뉴스래빗은 최근 사회적 공분을 산 불법 '강아지 번식 공장' 문제 이면에는 '순종'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봤다.

▼ '순종'에 고통받는 우리 주변 강아지들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


#1. 쉽지 않아야 한다지난달 15일 '강아지 공장' 실태 방송 이후 비난 여론은 들끓었다. 국내 동물보호단체에 따르면 불법 강아지공장은 전국적으로 약 4000곳. 그 비좁은 우리에서 어미견들은 임신·출산의 기계로 사육됐다. 화난 시민 30만여명이 강아지 공장 철폐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송혜교 윤계상 효린 현아 등 유명 연예인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강아지 공장 철폐를 위한 동물보호법 개정 서명 운동 참여를 독려했다.

정부의 강아지 공장 전수 조사와 동물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졌다. 하지만 강아지 공장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순종' 선호에 대한 애견인의 근본적 반성도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닥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달 24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애견카페를 찾았다. ‘강아지데이케어(강아지를 맡아서 돌보는 일)’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다. 입구부터 개 여섯 마리가 마중 나왔다. 장시간 집을 비우는 손님들이 맡긴 개들이다. 이태원이라 만큼 많은 단골 고객 중엔 외국인이 많다. 외국인들의 애견문화를 자주 접한 손경미 대표는 국내 애견문화의 아쉬움을 풀어놨다.“유행처럼 많은 이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다녀요. 너도나도 강아지 키우는 걸 쉽게 생각하게 해요. 쉽게 데리고 온 만큼 버리는 거도 쉬운 거죠."

손 대표는 개 한마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유기견이었는데 외국인이 입양했어요. 앞서 4주 동안 지켜본 뒤 입양을 결정했어요. 평생을 같이 살 가족을 정하는데 신중해야죠. 지나가다가 예쁘다고 데리고 온 개가 아니에요.”소유물 개념인 ‘애완동물’ 대신 함께 생활하는 가족으로서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쓴다. 진정 가족이라 생각한다면 개라도 입양 과정은 쉽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2. 수요가 잉태한 '강아지 공장'

손 대표에게 최근 '강아지 공장'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강아지 공장 운영자는 분명 잘못됐지만, 쉽게 강아지를 사고 버리는 사람들도 문제예요. 그들이 어디서 강아지를 데리고 오겠어요. 펫숍(애견매장)이에요. 개를 싸게 사와 비싸게 팔아야하니 공장이 운영되는거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듯.”

국내 애견 문화에 뿌리 깊은 '순종' 선호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펫숍에서 어떤 강아지를 사는지 보세요. ‘순종’이에요. 한국은 외국처럼 잡종(믹스견)에게 호의적이지 않아요. 근데 순종이라는 강아지는 대개 근친으로 태어나요. 건강에 문제가 있는 강아지가 많죠. 사람이랑 똑같아요.”
<출처: Science and Dogs>

#3. 순종 향한 인간의 욕망..유전병 대물림

순종견의 유전적 결함은 꾸준히 지적됐다. 1915년 메이슨(W.E. Mason)이 쓴 세계견종사전(Breeds of All Nations)와 비교하면 오늘날 순종견의 유전적 변형을 상세히 알 수 있다. 근친으로 태어난 순종견이 앓는 유전병은 다양하다.

잉글리시 불독은 기형적으로 커진 머리 때문에 제왕절개로만 태어난다. 평균 수명은 6살에 불과하다. 닥스훈트는 과도하게 길어진 등과 목 탓에 척추 디스크를 쉽게 앓는다. 슈나우저의 결석, 화이트테리어의 아토피, 퍼그의 심장병, 세인트 버나드의 혈우병, 골든 리트리버의 암 등 수많은 순종견들이 유전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순종견을 고집하는 인간의 욕망과 시장 상품 가치가 그 주범이다.
# 4. 인식 바껴야 '강아지 공장' 사라진다

손 대표는 카페의 개 한 마리를 더 소개하며 씁쓸해했다.

“우리가 똥개라고 부르는 그냥 시골 누렁이죠. 얼마 전 한 손님이 인스타그램에 이 개 사진을 찍어서 올렸어요. 견주가 외국인이라 더 놀랍다는 글과 함께요. 외국인이 이런 (잡종) 개를 키운다는 게 신기했나봐요. 믹스견을 보는 한국인 인식이 그래요.”

순종견의 유전적 결함에 대해 국내 애견인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손대표는 꼬집었다. 잡종견은 순종에 비해 열등한 생명체로 취급된다. 소비자가 순종을 고집하니 수요는 높아진다. 특종 인기 순종견의 공급은 달리고 가격은 상승한다. 순종견을 근친교배로 싸고 많이 대량 생산하는 불법 '강아지 공장'이 독버섯처럼 퍼져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순종을 선호하는 국내 애견문화 속에는 '타인의 시선'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허리가 길지만 네 다리는 짧은 닥스훈트처럼 생김새가 독특한 순종견을 마치 고급 액세서리처럼 거리에서, SNS에서 자랑하고 보여주기에 몰두하는 애견인이 많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순종-잡종을 향한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전병을 앓는 개들도, 이들을 잔혹하게 유통하는 불법 강아지공장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꼽씹어야할 때다.

경기도 성남에서 동물케어센터를 운영하는 김선아 수의사도 국내 애견문화에 아쉬움이 많았다.

"순종견은 질병을 앓기 쉬워요. 강아지 공장에서 근친으로 태어나면 더 심해지죠. (인간이) 작고 귀여운 순종만 찾는 건 문제가 있어요. 유기견보호소에서도 순종 강아지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요. 믹스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합니다. 정말 가족이라 생각한다면 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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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기자,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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