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또 불붙는 개헌론…미풍될까, 태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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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선주자 등 정치권 잇달아 “개헌하자”20대 국회가 개원하자 마자 개헌론이 부상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 논의는 자칫 정치권의 모든 현안을 빨아들일 ‘블랙홀’이 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그럼에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와 여야에서 개헌 필요성을 잇달아 제기하면서 개헌론은 불붙을 전망이다.
대통령 중임제-분권형-내각제 등 의견 분분
집권 유불리 따지며 권력구조만 관심…매번 변죽만 울려
◆20대 국회 개원 맞춰 개헌론 제기정세균 국회의장은 13일 국회 개원사를 통해 “개헌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개헌 논의를 20대 국회 논의 과제로 상정한 것이다. 이어 “개헌은 결코 가볍게 꺼낼 사안은 아니다”며 “그러나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문제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개헌의 기준과 주체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며, 목표는국민통합과 더 큰 대한민국”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을 비롯한 6개 사회단체 연합체인 국가전략포럼은 이날 국회에서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새누리당 김무성·이주영·나경원·배덕광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영춘·서영교·박재호 의원 등이 참석했다.이주영 의원은 축사에서 “20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앞으로 차기 대선까지 약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 여유가 있다”며 “이 시기에 개헌을 추진해 신속하게 국민투표까지 한다면 개헌 역사를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의원도 “대한민국 헌법은 지금까지 거의 30년째 개정되고 있지 않다”며 “개헌문제는 정권 말기라서 또는 정권 초기라서 늘 미뤄졌다. 이제는 국회가 새로 시작했으니까 개헌 문제에 대해서 논의해야 할 때”라고 했다.
◆개헌한지 3년만에 개헌론 등장
개헌론이 본격 등장한 것은 1990년이다. 1987년 개헌한지 불과 3년만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민정당 총재)과 김영삼(YS) 민주당 총재, 김종필(JP)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3당 합당을 하며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기로 하고 각서까지 썼다. 그러나 YS가 대통령 출마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각서는 휴지조각이 됐다.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DJ)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자유민주연합의 JP는 단일화 조건으로 내각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놨다.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이 내각제를 고리로 DJP연합을 했다. 3당 합당 당시 한 차례 당했던 JP는 DJ가 대통령이 되면 1999년까지 개헌을 마치기로 한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DJ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 대국민담화에서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으나 당시 한나라당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집권 전망이 밝았던 한나라당은 개헌론에 휘말려서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도 2007년 대선 한나라당 경선에서 집권하면 개헌을 하겠다고 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2012년 11월6일 새누리당 대선후보 시절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 카드를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정치쇄신안’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선거용의 정략적 접근이나 내용과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시한부 추진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집권 후 4년 중임제와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 강화 등을 포함한 여러 과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공감대를 확보해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대선 주자들 개헌 찬성
최근 정치권에서 개헌 움직임이 활발하다.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새누리당 대선 후보들은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원 지사는 지난달 31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정치권끼리 서로 연대하는 데 있어 명분은 개헌이 될 것”이라며 “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5년 단임제로는 장기적인 국가발전 전략을 세우는 데 한계가 있고, 대통령이 제왕적인 권력을 갖다 보니 민의의 반영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에서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를 골자로 한 분권형 개헌론이 제기된 바 있다.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외치(外治)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內治)를 하는 총리, 이렇게 하는 것이 현행 5년 단임제 대통령제보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이원집정부제를 직접 언급했다.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조합’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을 떠나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고 밝혔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4월말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5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하는 형식적 민주절차를 갖췄지만 실질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이 부작용을 낳았다”며 개헌 필요성을 제기했다.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도 지난달 19일 일본 강연에서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 개헌을 통해 한국 정치 권력구조의 새 길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도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개헌을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지난 10일 “20대 국회는 1987년 체제의 공적과 한계에 대한 논의를 여의도 의사당에 가져와야 한다”고 말해 개헌필요성을 시사했다는 관측을 낳았다.
◆대선전까지 개헌 성사 어려울 듯
내년 대선전까지 개헌이 성사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이 반대하고 있어 탄력을 받기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 상황이 (개헌 논의로) 블랙홀 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여도 상관없는 그런 정도로 여유가 있느냐”며 “한 치 앞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으로 몰아가면서 개헌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2014년 중국 상하이에서 분권형 개헌론을 제기했다가 청와대가 반대하자 뒤로 물러섰다.권력구조 개편과 관련, 대통령 중임제-분권형-내각제-6년 단임제 등 의견이 달라 뜻을 하나로 모으기 쉽지 않다. 정치권이 집권 유불리를 따져 불쑥 불쑥 개헌을 추진하다 보니 매번 군불만 지피고 변죽만 울리며 제대로 된 담론의 장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대한민국의 이념적 지향, 통일에 관한 부분 등을 광범위하게 논의해야 하는데 정치권은 권력구조에만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