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발목잡기에 누더기 된 '맞춤형 보육'

현장에서
표심에 흔들린 정치권이 보육정책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맞춤형 보육제도’는 부모의 맞벌이로 종일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일정한 보육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만 2세 이하 자녀를 둔 전업주부가 무상으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간을 하루 6시간으로 제한한 것이 핵심이다.

당초 박근혜 정부는 지난 대선 때 공약에 따라 2013년 ‘전면 무상보육(만 2세 이하 자녀를 둔 모든 부모에게 종일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을 시행했다. 하지만 과잉복지란 비판이 생기고 어린이집 난립으로 인한 보육의 질 하락, 복지재원 낭비 등의 부작용이 커지자 작년 11월 일종의 ‘선택적 복지’인 맞춤형 보육으로 돌아섰다. 여야도 합의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맞춤형 보육 시행(7월1일)에 임박해 야당이 뒤늦게 종일반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지원금도 더 늘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제도의 당초 취지는 무색해지고 오히려 보육 현장에 혼선만 가중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정부는 애초 어린이집을 6시간만 이용할 맞춤반 부모에겐 종일반(12시간) 지원금액의 80%(위급상황 시 사용하는 바우처 금액 제외)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행일자가 다가오자 어린이집은 지원금이 줄어들면 경영난에 빠질 수 있다며 집단 휴원을 예고하고 나섰다. 결국 지난 16일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정치권과 정부는 홑벌이라도 종일반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기준을 가구당 세 자녀에서 두 자녀로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현 어린이집 이용자의 95%가 종일반을 이용할 수 있다. 제도 시행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첫째가 3세 미만인 세 자녀 가구에만 적용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협상은 쉽지 않은 모양새다.

어린이집에 지급되는 보육지원금도 올려주기로 했다. 정부는 야당 공세에 밀려 맞춤반 지원금 중 기본보육료(37만2000원·2015년 기준)는 유지하고 부모 보육료(43만원)만 종전의 80%로 낮추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맞춤반 지원금은 71만6000원(0세 기준)이다. 긴급 상황 시 사용할 수 있는 월 15시간 바우처(6만원)까지 합치면 총 77만6000원이다. 종일반(82만5000원)의 94%로 큰 차이가 없다. 이미 제도는 취지를 잃고 누더기가 됐지만 여·야·정 합의 이후에도 야당은 “맞춤형 보육의 졸속 시행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관련 성명을 잇따라 내며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맞춤형 보육제도의 본래 취지는 ‘어린이집에 안 보내면 손해’라는 인식으로 영아가 무조건 어린이집에 종일 맡겨지는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누더기가 된 현 보육제도로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민간 어린이집이 경영난을 겪는 것은 맞춤형 보육제도 때문이 아니다. 어린이집 시장의 ‘공급 과잉’ 때문이다. 지난해 민간 어린이집 정원 충족률(79.4%)은 80%를 밑돌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저출산 현상으로 영유아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심성미 경제부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