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탈북자 재판 잔인한 줄 모르는 민변

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kys@hankyung.com
“왜 잔인하죠? 이 사건은 가족들과 국가정보원의 의사가 다른 건데…. 실체적 진실은 법관이 판단해야 합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의 한 변호사가 “12명을 재판에 세우면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중국의 음식점을 탈출해 한국으로 입국한 여 종업원 12명에 대해 민변이 신청한 인신구제보호 심사 청구 소송 심문이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였다. 민변은 이날 재판부에 탈북자 12명의 출석을 재차 요구했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재판부 교체를 요청하는 기피신청까지 했다.왜 민변은 탈북자 12명의 재판 출석을 줄기차게 요구할까. 이번 탈북이 국정원의 ‘납치극’일 가능성이 있어 인신구제 보호신청을 통해 탈북자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게 민변의 일관된 주장이다. 민변 변호사는 지난 20일 “민변은 탈북자 인권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며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국정원이 개입하지 않고서는 이런 집단 탈북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민변 변호사들은 12명의 탈북자들이 재판에 서서 진술할 때 겪을 고통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을까. 탈북자들은 목숨을 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법정에서 ‘자발적 입국’이라고 증언하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진다. ‘비(非)자발적 입국’이라고 하면 북한으로 송치돼 어떤 보복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잔인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판에 참석한 민변의 한 변호사에게 22일 전화를 걸었다. 탈북자들에게 ‘위험한 선택’을 강요하는 의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탈북자들이 ‘자발적으로 탈북했다’고 진술하면 북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것은 가정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목숨이 걸려 있는지 확실한 것은 아니니 탈북자를 법정에 세워도 된다는 논리였다.국정원은 못 믿으면서 북한 당국이 가족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민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민변이 밝히고 싶은 ‘실체적 진실’은 정녕 사람의 목숨보다도 중요한 것인가.

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