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광주 소년이 겪은 5·18…"역사 잊은 민족에게 미래 없다"

이랑순 광주중앙도서관장

소년이 온다
광주에 사는 많은 사람에게 5·18 민주화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불과 36년 전 일어난 일이기에 직접 5·18 민주항쟁을 겪은 사람이 많다. 직접 겪지 않았어도 당시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이를 잃은 분도 많다. 이들에게는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총칼 앞에서 희생당하며 생긴 트라우마 역시 남아 있다.

최근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 씨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18일부터 열흘간 벌어진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을 그린다. 시민군이 계엄군에 진압돼 5·18 민주화운동이 끝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도 책에 담았다. 저자는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상상만 해서 쓰지 않고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거쳤기에 당시 현장 분위기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소설 속 중학교 3학년 동호는 5·18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친구 정대가 계엄군에 희생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후 동호는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하며 시민군을 돕는다. 동호는 시신들 사이에서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힌다. 그는 줄곧 친구 정대의 죽음을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계엄군이 마지막 진압작전을 벌인 날 동호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도청에 남는다. 동호의 형과 누나들도 모두 도청에 있었다. 동호와 형, 누나는 이날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이후 경찰에 연행돼 끔찍한 고문을 받는다. 심적으로도 살아남은 걸 치욕으로 여기거나 무력감에 빠져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소설은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겪는 고통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렸다. 무자비한 국가 폭력이 무너뜨린 순박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무고하게 죽은 어린 생명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당시 광주를 겪지 않은 사람들도 이들이 받았던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책을 읽고 나면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끔찍한 폭력의 굴레를 끊기 위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끔 일부에서 당시 총칼에 가족·친구를 잃은 사람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이들을 조롱하는 걸 볼 때가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폭력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 아수라장을 겪은 사람들은 당시의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이들은 자신이 받은 고통을 사회가 위로하고 공감해주기를 원한다. 이 소설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사회가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이상 이 땅에서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지 않기를 바란다. 더 이상 억울한 영혼들이 생겨나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한강 지음, 창비, 216쪽,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