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입력
수정
지면A38
"협력하고 배려하는 문화 되찾아야지난 반세기 우리가 이룩한 여러 측면에서의 발전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것이며 앞으로 어느 민족도 재현하기 어려운 자랑스런 역사다.
정체 벗어나 한 단계 더 도약 가능
노사·지역·세대갈등 문제도
주위 안 보는 각자도생 문화 때문"
김도연 < 포스텍 총장 >
경제지표를 돌아보면 1964년에야 어렵게 달성한 한 해 수출 1억달러는 2011년에 이미 그 5000배를 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은 약 일곱 배 늘었지만 대한민국 GDP는 무려 35배나 증가했다. 이렇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힘차게 밝은 미래를 지향하던 대한민국이 최근에는 왜 머뭇대고만 있나?우리의 연간 1인당 소득은 10년 넘게 2만달러대에 정체하고 있다. 1987년에 2만달러를 넘고, 그 후 5년 만인 1992년에 3만달러를 훌쩍 돌파한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의 관행과 제도에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것이 틀림없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이란 중세 서양 시(詩)에서 장미를 기적으로 바꾼 것이 우리 이야기가 될까 두렵다.
되돌아보면 지난 반세기 우리의 발전은 각자도생(各自圖生)과 각개약진(各個躍進)으로 이룬 것으로 믿어진다. 민족사에서 가장 처절한 재난이었던 6·25전쟁은 우리 모두에게 살아갈 방법은 제각기 찾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인생관을 각인시켰다. 먼저 안전한 곳으로 피란간 지도자에 의해 한강 다리가 폭파되고 그로 인해 희생된 가족과 이웃을 보면서 마음속에 무엇이 남았을까. 흥남을 떠나면서 몰려든 30여만명의 피란민 중 배를 탄 사람은 3분의 1이 안 됐다. 전쟁 후 각자도생은 모두의 DNA가 됐다.
그 후의 경제 기적은 그야말로 전투를 치르듯 일하면서 이룬 것이다. 포스코 건설 초기 박태준 회장이 “제철소를 제대로 못 만들면 모두 우향우해 바다로 뛰어가 목숨을 버리자”며 직원을 독려한 것이나, 정주영 회장이 “이봐! 해보기나 했어?”라고 다그치며 불가능에 끊임없이 도전한 일들은 모두 전투와 다를 바 없는 그때 상황을 보여주는 것들이다.그리고 모든 기업과 조직이 택한 전술은 전투에서 병사들이 지형 등을 이용해 개별적으로 돌진하는 각개약진이었다. 이런 각개약진은 결과적으로 아주 빠른 성장을 가져왔지만, 그 과정에서 주위를 배려하고 이웃과 협력하는 상부상조 전통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의 의미를 모두가 다시 새겨야 할 때다. 그간은 개별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앞으로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문화를 필히 되찾아야 할 것이다.
지역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국회의원을 선출했기에 당연히 그들은 지역구만을 위해 각개약진하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고통받고 있는 노사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 등 많은 문제도 결국은 주위를 돌보지 않는 각자도생 문화 때문이다.국내 200여개 대학도 마찬가지다. 한 해 100여만명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90년대에 비해 이제는 고교 졸업생이 40여만명밖에 안 되는 세상이다. 이로 인한 문제들은 각 대학이 각자도생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대학들이 서로 협력하며 능동적인 통합에 나서지 않는다면 다른 해결책은 없다. 매우 시급한 문제다.
대학 간 통합이 우리만의 이슈는 아니다. 프랑스에는 800여년 가까운 긴 역사 속에서 인문사회 분야를 이끌어 온 소르본대와 퀴리 부인이 교수로 일하면서 노벨상을 받은 이공계 명문 퀴리대가 2018년 1월1일로 통합을 선언했다. 폭넓은 소양의 인재 양성과 세계 무대에서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프랑스 대학의 명성을 서로가 힘을 합쳐 다시 끌어올리려는 목적이다. 같은 대학, 같은 캠퍼스 안에서도 학과 사이의 벽 하나 허물기 어려운 한국 현실과 너무 대조적이다.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고 남을 배려하며 힘을 합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살리는 길이다. 이제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각자도생과 각개약진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