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재무] 영업 현금흐름 좋은 중견기업 채권 '흥행몰이'

태광실업·노루표페인트·국도화학 등 회사채에 기관 수요 몰려 낮은 금리 발행

매년 수백억원씩 현금 벌고
대기업 우량 계열사 못잖은 안정적 신용등급 '매력'

공모주 우선배정 받으려
BBB급 회사채 품귀 현상
태광실업 노루페인트 등 매년 수백억원의 현금을 꾸준히 벌어들이는 기업들의 채권이 올 상반기 기관투자가로부터 큰 관심을 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단기 투자 관점에서 대기업 우량 계열사 못지않은 안전성을 갖췄으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억원씩 이자 절감나이키 등에 운동화를 납품하는 태광실업은 지난 5월 3년 만기 회사채 300억원어치를 연 2.51% 금리에 발행했다. 앞서 주관 증권사와 협의해 제시한 예상금리(희망공모금리 상단)보다 0.36%포인트 낮다. 수요예측(기관투자가 대상 사전 청약) 과정에서 모집금액의 3배를 웃도는 1000억원의 수요가 몰린 덕분이다.

만기까지 3년에 걸쳐 나눠 내는 이자비용은 모두 22억5000만원으로 당초 예상보다 3억2000만원 줄어들었다. 올 상반기 신용등급 A급 이상 비금융 회사채 가운데 이자비용 절감폭이 가장 컸다. 태광실업의 신용등급은 투자등급 10단계 중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A(안정적)’다.

올 들어 신용등급이 오른 노루페인트(A-)도 수요예측 흥행에 힘입어 회사채 발행금리를 예상보다 0.35%포인트 낮췄다. 국내 최대 에폭시 생산업체인 국도화학(A+)과 시멘트시장 과점업체인 한일시멘트(A+)는 똑같이 0.31%포인트에 해당하는 이자비용을 절감했다.기관투자가들이 서로 낮은 이자에 돈을 빌려주려고 경쟁한 기업은 대부분 신용등급 대비 뛰어난 현금흐름 창출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연차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100% 지분을 보유한 태광실업은 지난해 연결 재무제표 기준 1조5926억원의 매출과 61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영업활동을 통해 회사에 들어온 실제 현금을 뜻하는 영업활동현금흐름은 1592억원에 달했다. 김혜원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운전자본 부담이 크지 않아 앞으로도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영업현금흐름을 꾸준히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도화학은 지난해 1조118원의 매출과 563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주요 고객인 조선업체들이 실적 악화로 고전하는 동안에도 선박 건조량이 줄지 않은 덕분이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은 673억원이다. 노루페인트와 한일시멘트도 꾸준한 건설산업 수요로 뛰어난 현금흐름 창출능력을 자랑한다.

◆신인도보다 실적에 초점

반면 신인도가 뛰어난 대기업그룹 계열사라 하더라도 실적 추세가 좋지 못한 기업은 기관투자가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자산총액 기준 국내 16위인 LS그룹의 핵심 계열사 LS전선(A+)은 지난 2월 예상보다 높은 이자비용으로 회사채 발행을 확정해야 했다. 3년 만기 회사채 700억원어치 투자자를 모집했는데 수요예측 참여금액이 250억원에 그친 탓이다. 결국 예상보다 0.05%포인트 높은 연 2.59% 금리로 300억원만 조달해야 했다. 올 상반기 발행한 회사채 가운데 희망공모금리 상단보다 위에서 발행금리를 결정한 유일한 사례다. 기관투자가들은 LS그룹의 뛰어난 신인도에 비해 부진한 실적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한국신용평가는 ‘저성장기 LS그룹의 네 가지 크레딧 이슈’ 보고서를 내고 그룹 전반의 재무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대다수 금융회사의 투자 후보군(유니버스)에서 빠져 있는 BBB급 기업 중에서도 올 상반기 낮은 이자비용에 채권을 발행한 곳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 지원 하이일드펀드 설정 증가에 따른 왜곡이 컸다.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채우기 위해 BBB급 회사채를 매집하는 과정에서 품귀 현상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BBB+’ 등급 회사채 발행 규모는 5700억원으로 ‘A-’ 회사채(2270억원)보다 훨씬 많았다. 2012년 수요예측 제도 시행 이후 첫 역전이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