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맞은 한의학] 세계 대체의학 시장 커지는데…과학화 뒤진 한의원 폐업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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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치료 불만" 34%
한의사마다 치료법 제각각…폐업률 2년새 11%P '껑충'
의사 반대로 과학화 막혀
"의료기기 활용 못해 한방효과 객관화 한계"
양·한방 협진도 지지부진
"10년 뒤 국내 암환자 미국서 협진치료 받을 수도"

국내에서는 ‘찬밥신세’로 전락한 한의학이지만 세계 보완대체의학 시장에서는 역할이 커지고 있다. 해외에선 양·한방 협진치료를 하는 의료기관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만 세계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한약 시장 무너지며 침체 맞아

한의계가 위기를 맞은 원인으로는 비아그라와 홍삼이 꼽힌다. 1999년 10월 화이자가 남성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를 국내에 판매하면서 한의원 한약 매출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한약을 먹던 고객층이 홍삼 등 건강기능식품으로 돌아선 것도 영향을 미쳤다.
○과학화 지연도 악영향한의학의 위기를 한의사들이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백만원짜리 한약을 팔아 큰 수익을 올리던 한의사들이 한방의료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 한의약 과학화 등에 게을리하면서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국내 한방의료기관 실태조사 결과 한방진료 이용자의 34%는 한의사마다 다른 치료방법에 불만을 제기했다. 국내 한의약 관련 표준지침은 15종류에 불과하다. 의료분야 표준지침이 100여 종류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의료비 부담이 큰 것도 한의원이 외면받는 요인이다. 전체 의료비 중 환자가 내야 하는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동네의원이 18.4%인 데 비해 한의원은 30.7%로 높다.
한의계는 한방 과학화를 위해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허용, 한방의료기관 보험 급여 확대 등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밥그릇을 뺏길 것을 우려한 의사들의 반대에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한방병원 원장은 “한의학의 과학적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등을 활용해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이 같은 수단이 모두 막혀 있다”고 하소연했다.○미국 등에선 양·한방 협진 확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1년 898억달러 규모이던 세계 보완대체의학 시장은 2015년 1141억8000만달러로 커졌고 2020년엔 1542억7400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인구 고령화 등으로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미국, 유럽 등 각국에서 보완대체의학 비중을 높이고 있어서다.
보완대체의학 육성을 위해 정부 차원의 전략을 세우는 나라도 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통의약의 효과성에 주목해 ‘전통의학전략 2014~2020’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엠디 앤더슨 암센터,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 등은 양·한방 협진 진료를 늘리고 있다.김지호 대한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암 치료를 할 때 양·한방 협진의 효과는 세계적으로 증명되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10년 뒤 한국 암환자가 양·한방 협진 치료를 받으러 미국에 가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