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둔 현금 아닌데"…답답한 재계 '사내유보금 개명' 토론회까지
입력
수정
지면A3
사내유보금 오해에 속타는 기업들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27일 또 파업했다. 올해 임금·단체협약과 관련한 다섯 번째 파업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29일에도 파업할 계획이다. 이 회사 노조는 기본급 9만6712원 인상, 직무환경 수당 상향,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4~2015년 2년간 4조789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그러나 노조는 “10조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쓰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노조의 이 같은 주장이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에 기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내유보금은 생산 시설이나 공장 부지 등 자산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곳간에 쌓아둔 현금’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경연 토론회…"세후재투자자본으로 바꿔 오해 막자"
(1) 기업 곳간에 쟁여놓은 현금?
생산시설·공장부지 등 실물자산이 90% 육박
(2) 기업이 투자 줄여서 늘어난다?
적자 기업 아니라면 투자 늘려도 계속 증가
(3) 한국 기업만 유독 많다?
현금 보유비율 12%…미·중·일 기업보다 낮아
◆사내유보금 중 현금 20%도 안 돼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설립 이후 매년 벌어들이는 이익에서 세금과 배당을 뺀 금액을 매년 회계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재무제표상에선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의 합계다. 이익을 모아 투자한 자산도 사내유보금으로 기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유보금을 기업이 쌓아 놓은 현금으로 생각하는 오류 때문에 ‘사내유보금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기업이 투자를 줄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온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열린 ‘사내유보금의 올바른 의미와 새로운 용어 모색’ 토론회에서 사내유보금의 대표적 오해 세 가지를 지적했다.
첫 번째는 ‘사내유보금은 현금’이라는 오해다. 김 부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사내유보금 가운데 현금성 자산보다 실물 자산이 더 많다”고 분석했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20년간 상장을 유지한 443개사의 지난해 기준 사내유보금 622조원 가운데 현금성 자산은 105조원으로 16.8%였다두 번째는 기업이 투자를 줄이기 때문에 사내유보금이 늘어난다는 오해다. 김 부연구위원은 “사내유보금은 현금을 써서 사들인 토지나 기계설비 등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투자가 늘어도 사내유보금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익보다 배당을 많이 하거나 손실을 내지 않는 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내유보금이 계속 증가한다”고 말했다. 한경연이 국내 비금융 상장사 1726곳을 분석한 결과 기업 나이 10년 이하 기업 110개의 사내유보금은 평균 691억원이었지만 11~20년 기업은 평균 922억원, 21~30년 기업은 1568억원, 31~50년 기업은 5318억원 등으로 커졌다.
세 번째 오해는 한국 기업만 사내유보금이 많다는 인식이다. 한경연 분석 결과 한국 상장사의 자산 대비 보유 현금 비율은 11.9%로 미국(12.6%), 중국(17.3%), 일본(18.1%), 대만(20.9%) 등보다 낮았다.김 부연구위원은 “다른 나라 기업도 사내유보금이 많지만 한국에서만 논란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후재투자자본으로 부르자”
이날 토론회에선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를 ‘세후재투자자본’이나 ‘창출자본’ 등으로 바꿔 부르자는 제안도 나왔다.권성수 한국회계기준원 상임위원은 “사내유보금이란 용어는 회계기준상의 용어가 아니며 미국과 일본의 회계기준에서도 사용되지 않는다”며 “세금을 낸 뒤 배당을 유보해 기업의 재투자 원천이 되는 자본이라는 의미를 담아 세후재투자자본으로 대체하자”고 말했다.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과도하게 쌓고 있다’는 인식에서 기반한 기업소득환류세제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기업환류소득세제는 투자, 임금, 배당으로 쓰이지 않은 이익에 추가로 10%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사내유보금의 소유자는 모든 주주”라며 “사내유보금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세금을 물리는 것은 상장사의 모든 주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제도 때문에 대기업이 임금을 올리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근로자의 소득 불평등 문제가 심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