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총격 사건으로 본 인간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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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8
연극 리뷰 -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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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글로리아’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벌이는 ‘일상적 비극’에 대한 이야기다. 1막이 일상적이고 표면적인 직장생활을 다소 과장해서 그렸다면, 2막과 3막은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인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사무실 왕따’ 글로리아는 충격적 사건을 저질러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동료들은 경쟁적으로 글로리아와 함께한 ‘마지막 15분’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들은 ‘글로리아 사건’으로 입은 트라우마를 경쟁하고, 그 트라우마로 돈을 벌려 한다. 켄드라의 말을 빌리면 인생역전을 위해 “왕따의 인생에 주석처럼 얹혀 살게 된 15분”이다.
극의 전반적인 시선은 지독한 냉소와 비아냥이다. 글로리아에 대한 동료들의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타인의 비극을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 안에 인종, 성별, 세대 갈등, 성소수자 문제, 학벌 등 사회적 편견들을 신랄하고 위트 있게 녹여내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배우들은 다양한 인간군상의 특징을 잘 살려낸다. 특히 정반대 캐릭터인 글로리아와 낸을 1인 2역으로 표현한 배우 임문희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극중 배경이 변하면서 배우들도 1인 다역을 소화한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표현하는 듯하다.
3막 배경은 로스앤젤레스의 한 영화사 사무실. 글로리아 사건 당시 잡지사에서 일하던 로린이 임시직으로 일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뉴욕 잡지사와 다르지 않다. 왕따에게 관심이 없고, 인턴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이 사무실에서 로린은 변하려 한다. 처음으로 직장 동료에게 맥주 한잔을 제안하며 말한다. “저는 좀 더 존재하고 싶어요.” 이내 시끄러운 사무실에서 헤드폰을 끼고 자기만의 세상에 들어갔지만 말이다. 연극은 말하는 듯하다. 매일 아침 사무실로 향하는 당신은 이 일상의 비극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당신은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가.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