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수의 약 파는 이야기⑪]인트로메딕의 신약후보물질 도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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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내시경 기업 인트로메딕이 최근 신약개발 사업에 대한 출사표를 내놨다. 이와 함께 당뇨병 치료제 신약후보물질 'BHD1028' 발굴에도 성공했음을 알렸다.
인트로메딕에는 신약개발을 위한 실험실도, 이를 위한 연구 장비도 없다. 그럼에도 새로운 기전(first-in-class)의 신약후보물질을 도출해냈다. 어떻게 이같은 성과가 가능했을까.인트로메딕의 신약개발 사업을 이끌고 있는 김브라이언 공동대표는 처음에는 세계 시장에서 규모가 가장 큰 암 관련 신약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하려다보니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목표가 항체 의약품이다보니 시약 하나 만드는 데도 47일이나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이후 생각한 것이 단일 질병 중 환자가 제일 많은 2형 당뇨였다. 이미 판매되고 있는 당뇨병 치료제들이 많이 있지만,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고 완치가 힘든 것이 현재 상황이다.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늘리자, 근본적인 치료 약물을 개발해보자고 김 대표는 마음 먹었다.
그는 25년여간 박스터 파마시아(현 화이자) 엘러간 타녹스(현 제넨텍) 등 글로벌 제약사와 셀트리온에서 바이오 신약의 기획과 개발, 허가 및 판매에 이르는 바이오의약품 사업화 전과정을 경험한 전문가다.◆ 연구(research)와 개발(development)의 분리
이때부터 김 대표의 연구(research)가 시작됐다. 2형 당뇨에 관한 수많은 연구논문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논문들은 2형 당뇨 환자들에게 특정 호르몬이 결핍돼 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이 결핍을 보완할 수 있다면 극적인 바이오신약을 만들 수 있겠다는 가정이 세워졌다.
문제는 호르몬을 외부에서 만들어 환자에게 투약하게 되면 어떤 면역 거부 반응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형태, 가장 작은 크기에서 약효를 가진 분자(molecule)를 만들자." 이 조건에 맞아떨어지는 것이 펩타이드였다.펩타이드는 2개 이상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단백질의 기능적 최소 단위다. 펩타이드 수준부터 단백질이 각각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당뇨 환자에 결핍돼 있는 호르몬은 특정 수용체에 붙어 인슐린 민감도를 높이고, 당 대사 과정을 촉진시켰다. 김 대표는 호르몬 대신 수용체에 붙는 펩타이드 단위를 개발키로 했다.
펩타이드를 만들기 위해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DGMIF) 신약개발지원센터의 김남두 박사를 찾았다. 김 박사는 분자설계 분야의 전문가로, 그는 수용체에 잘 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펩타이드 구조들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행운도 따랐다.일본이화학연구소가 당 대사에 관여하는 수용체의 구조를 규명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수용체의 구조가 밝혀졌으니, 이 구조에 잘 결합하는 펩타이드를 만드는 작업이 더욱 수월해졌다.
제안된 펩타이드의 기능 평가는 DGMIF 신약개발지원센터의 김성환 박사가 맡았다. 이를 통해 신약후보 펩타이드들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제 후보 펩타이드들이 실제 세포에서 효과를 내는지 알아봐야 했다.
민간 기업인 애니젠을 통해 실제 펩타이드를 만들었다. 만들어진 펩타이드의 세포 실험은 DGMIF의 민상현 박사가 담당했다. DGMIF에 연구 용역을 의뢰한 지 약 9개월 만에 2형 당뇨 치료제 후보물질 'BHD1028'이 도출됐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각 팀과의 일정과 의견을 조율하는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했다.
인트로메딕은 실험실과 장비, 내부 개발 전문가 없이도 전임상(동물실험)의 앞선 단계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같은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연구개발(R&D·research and development)에서 'R'과 'D'를 분리하고, 개발에 있어 해당 분야 외부 전문가들을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 신약개발 인프라, 국내에 포진
김브라이언 대표는 "단계별로 수많은 전문가가 필요한 신약개발을 기관이나 기업이 혼자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우리 주위에는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해 민간 위탁기업 등에 최고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고, 이들과 함께하면 효율적인 신약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아닌 이상 만만치 않은 자금이 들어가는 분석장비 도입, 연구진 영입 등을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 신약개발의 높은 실패 가능성까지 감안한다면 연구 수준에서 좌절되는 아이디어들도 많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3~5명으로 구성된 세계적 신약개발 기업들이 나오는 것은, 이같이 사회적 기반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인트로메딕은 내년 상반기까지 글로벌 표준에 맞춰 BHD1028의 전임상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임상도 국내 전문기관을 활용해 마칠 계획이다.한미약품의 조 단위 기술수출을 계기로 신약개발에 관심을 갖는 회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디어는 있으나 자금 부담 등으로 고민하는 곳들에서 눈여겨 볼 사례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
인트로메딕에는 신약개발을 위한 실험실도, 이를 위한 연구 장비도 없다. 그럼에도 새로운 기전(first-in-class)의 신약후보물질을 도출해냈다. 어떻게 이같은 성과가 가능했을까.인트로메딕의 신약개발 사업을 이끌고 있는 김브라이언 공동대표는 처음에는 세계 시장에서 규모가 가장 큰 암 관련 신약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하려다보니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목표가 항체 의약품이다보니 시약 하나 만드는 데도 47일이나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이후 생각한 것이 단일 질병 중 환자가 제일 많은 2형 당뇨였다. 이미 판매되고 있는 당뇨병 치료제들이 많이 있지만,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고 완치가 힘든 것이 현재 상황이다.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늘리자, 근본적인 치료 약물을 개발해보자고 김 대표는 마음 먹었다.
그는 25년여간 박스터 파마시아(현 화이자) 엘러간 타녹스(현 제넨텍) 등 글로벌 제약사와 셀트리온에서 바이오 신약의 기획과 개발, 허가 및 판매에 이르는 바이오의약품 사업화 전과정을 경험한 전문가다.◆ 연구(research)와 개발(development)의 분리
이때부터 김 대표의 연구(research)가 시작됐다. 2형 당뇨에 관한 수많은 연구논문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논문들은 2형 당뇨 환자들에게 특정 호르몬이 결핍돼 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이 결핍을 보완할 수 있다면 극적인 바이오신약을 만들 수 있겠다는 가정이 세워졌다.
문제는 호르몬을 외부에서 만들어 환자에게 투약하게 되면 어떤 면역 거부 반응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형태, 가장 작은 크기에서 약효를 가진 분자(molecule)를 만들자." 이 조건에 맞아떨어지는 것이 펩타이드였다.펩타이드는 2개 이상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단백질의 기능적 최소 단위다. 펩타이드 수준부터 단백질이 각각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당뇨 환자에 결핍돼 있는 호르몬은 특정 수용체에 붙어 인슐린 민감도를 높이고, 당 대사 과정을 촉진시켰다. 김 대표는 호르몬 대신 수용체에 붙는 펩타이드 단위를 개발키로 했다.
펩타이드를 만들기 위해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DGMIF) 신약개발지원센터의 김남두 박사를 찾았다. 김 박사는 분자설계 분야의 전문가로, 그는 수용체에 잘 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펩타이드 구조들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행운도 따랐다.일본이화학연구소가 당 대사에 관여하는 수용체의 구조를 규명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수용체의 구조가 밝혀졌으니, 이 구조에 잘 결합하는 펩타이드를 만드는 작업이 더욱 수월해졌다.
제안된 펩타이드의 기능 평가는 DGMIF 신약개발지원센터의 김성환 박사가 맡았다. 이를 통해 신약후보 펩타이드들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제 후보 펩타이드들이 실제 세포에서 효과를 내는지 알아봐야 했다.
민간 기업인 애니젠을 통해 실제 펩타이드를 만들었다. 만들어진 펩타이드의 세포 실험은 DGMIF의 민상현 박사가 담당했다. DGMIF에 연구 용역을 의뢰한 지 약 9개월 만에 2형 당뇨 치료제 후보물질 'BHD1028'이 도출됐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각 팀과의 일정과 의견을 조율하는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했다.
인트로메딕은 실험실과 장비, 내부 개발 전문가 없이도 전임상(동물실험)의 앞선 단계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같은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연구개발(R&D·research and development)에서 'R'과 'D'를 분리하고, 개발에 있어 해당 분야 외부 전문가들을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 신약개발 인프라, 국내에 포진
김브라이언 대표는 "단계별로 수많은 전문가가 필요한 신약개발을 기관이나 기업이 혼자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우리 주위에는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해 민간 위탁기업 등에 최고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고, 이들과 함께하면 효율적인 신약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아닌 이상 만만치 않은 자금이 들어가는 분석장비 도입, 연구진 영입 등을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 신약개발의 높은 실패 가능성까지 감안한다면 연구 수준에서 좌절되는 아이디어들도 많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3~5명으로 구성된 세계적 신약개발 기업들이 나오는 것은, 이같이 사회적 기반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인트로메딕은 내년 상반기까지 글로벌 표준에 맞춰 BHD1028의 전임상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임상도 국내 전문기관을 활용해 마칠 계획이다.한미약품의 조 단위 기술수출을 계기로 신약개발에 관심을 갖는 회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디어는 있으나 자금 부담 등으로 고민하는 곳들에서 눈여겨 볼 사례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