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경영판단의 원칙' 또 인정받았다

현대그룹 vs 쉰들러 소송
여주지원, 현정은 회장 손들어줘
"합리적 절차 거쳤다면 손해 면책"
광장·세종 연합, 김앤장에 완승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이사회를 거치는 등 합리적 의사결정 절차를 밟았다면 업무상 배임 등으로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경영 판단의 원칙’이 또 한번 법원에서 인정받았다.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민사1부(재판장 유영현)는 지난 24일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다국적업체 쉰들러홀딩AG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현 회장 측 손을 들어줬다. 현 회장을 포함한 회사 경영진 네 명이 파생금융상품 계약 등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손해를 끼쳤지만 이사로서 임무를 위반한 불법 행위는 없었다는 판단이다.승강기부문 세계 2위인 쉰들러는 2003년 현대그룹이 KCC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놓고 맞붙었을 때 현대그룹의 ‘백기사’를 자처했다. 이후 끊임없이 현대엘리베이터 승강기사업을 탐내다 이번 소송까지 냈다. 이번 소송은 경영 판단이 핵심 이슈였다. 현 회장 측이 현대상선 주가와 연계된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해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입히고 담보를 제공한 행위, 현대종합연수원 주식을 취득한 행위 등이 도마에 올랐다. 경영 판단 여부를 둘러싼 법리 공방에 양측은 대학교수와 싱가포르 주재원까지 동원해 치열하게 다퉜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이 사건의 각 파생상품계약 체결 행위 등이 회사의 최대 이익에 부합한다는 합리적 신뢰 하에 신의성실에 따라 경영상의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쉰들러 측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현대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광장 및 세종 연합군의 대형 로펌 간 자존심 대결이기도 했다. 광장과 세종은 준비서면을 함께 작성하는 등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광장에서는 고원석(사법연수원 15기) 장성원(15기) 송평근(19기) 김범진(34기) 변호사 등이, 세종에서는 윤재윤(11기) 오종한(18기) 이동건(29기) 이숙미(34기) 변호사가 주축이 됐다. 오종한 변호사는 “파생금융상품 계약만 해도 7년간 10여건 체결되는 등 복잡한 사건이어서 변호인 간 협업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