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녹색힐링! 이곳에선 누구나 나무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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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숲길 여정숲은 노래한다. 바람은 나무 사이를 가르고, 나무는 잎을 떨구고, 냇물은 묵묵히 흐르고, 새들은 지저귄다. 숲이 전하는 아늑함과 따뜻함을 쫓아 캘리포니아 북쪽으로 떠났다. 숲길 따라 샌프란시스코 북쪽으로 가는 길이다. 마린 카운티(Marin County), 멘도시노 카운티(Mendocino County), 그리고 훔볼트 카운티(Humboldt County) 등 낯선 지명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익숙함은 지루함을 낳는 법. 처음 만나는 도시의 이름은 굳었던 머리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100m 넘는 거목들의 합창…이곳은 거인국?
칙칙폭폭 연기 뿜는 스컹크 트레인
숲과 계곡을 거침없이 내달리고,
샹들리에 트리 아래선 연인들의 속삭임
1000여년간 거름이 된 유모 나무들을 지나
훔볼트 주립공원에 가니…어? 새소리가 들리지 않네
영롱한 유리구슬이 즐비한 글래스 비치는 필수코스
마린 카운티, 숲의 노래를 들어라선홍빛 금문교(Golden Gate Bridge)는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카운티를 잇는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적인 건축물이 됐다. 다리는 본디 물길 사이의 두 지역을 잇는 것인데 그 위상은 샌프란시스코가 독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캘리포니아의 유명 와인 생산지인 나파밸리나 소노마밸리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마린 카운티를 그저 스치는 길목으로 여겼다. 마린 카운티가 뽐내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다소 박한 평가다.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시야가 온통 초록으로 물든다. 구불구불한 산길로 들어서자 초록빛은 채도를 높였다. 산허리에 구름이 걸리고 구름의 길목에는 아름다운 저택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다. 마린 카운티는 전체 면적의 80%가 녹지다. 도로 한가운데에 있더라도 거대한 공원 속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드넓은 초록 길을 지나 향한 곳은 밀 밸리 인근의 뮤어우즈 국립공원(Muir Woods National Monument)이다. 미국 내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방문객은 연 100만명을 웃돈다. 산업화가 급격히 이뤄진 190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의 수많은 숲은 무계획적이고 무자비한 벌목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샌프란시스코 지역 의회의원이던 윌리엄 켄트 부부가 1905년에 개인 재산을 털어 이 지역을 매입했다. 당시 구매가는 약 4만5000달러. 부부는 1908년에 이 숲을 정부에 기증했고, 이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정부는 켄트 부부의 이름을 따 공원 이름을 지으려 했지만 켄트 부부는 자연보호 운동가 존 뮤어 박사에게 숲을 헌정했다. 존 뮤어 박사는 환경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다. 포슬포슬한 흙길 위에 두 발을 딛고 들숨 가득 맑은 공기를 마시는 사람들은 모두가 평온한 모습이다. 길에 선 누구라도 나무를 닮아간다.멘도시노 카운티 - 숲을 즐기는 유쾌한 방법한낮에는 태양이 작열하고, 아침과 저녁은 태평양의 습기가 몰고 온 안개와 한기가 은은히 퍼진다. 명암의 대비가 극명했다가 이내 세상 모든 그림자가 자취를 감추는 마법 같은 날씨가 이어진다. 동행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혼자 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맞다. 이곳은 혼자 여행해도 외로움보다 즐길 만한 고독이 마음을 채울 것 같다. 그럼에도 혼자보단 둘이 낫겠다. 레드우드 숲을 달리는 증기기관차도 타야 하고, 샹들리에 나무 아래에서 기념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혼자라면 조금 아쉬울 것 같다.
멘도시노 포트 브래그(Fort Bragg)에는 작은 역사(驛舍)가 있다. 역사 옆 기찻길에는 스컹트 트레인이라는 이름의 증기기관차가 있다. 연료 타는 냄새가 스컹크 냄새만큼 지독하다고 붙은 이름이다. 오래된 기차역의 장식품 같은 기관차는 여전히 힘차게 달린다. 129년 전에는 인근에서 벌목한 레드우드 목재를 싣고 달렸다. 1억년 전부터 살았다는 레드우드의 한국 이름은 미국삼나무.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로 캘리포니아 북부가 주요 서식지다. 성장 속도가 빨라 매년 1.8m나 자라는 탓에 100m 이상의 거목으로 성장한 나무들이 미국 전역에 부지기수다. 화재와 가뭄이 나무를 위협하면 모(母)나무가 자(子)나무를 틔우고 자가복제하는 영리함도 지녔다. 곰팡이와 벌레가 번식하지 못하는 나무의 특성 덕에 불에 탄 뒤에도 살아남는다. 레드우드는 결이 아름답고 색채가 고르고 착색이 잘된다. 그래서 미국 산업화 시기의 목재업자들은 레드우드 벌목에 열중했다. 도가 지나치자 정부는 벌목을 규제했고 나중엔 아예 금지했다.
나무는 다시 생동해 숲을 이뤘다. 숲과 계곡을 누비는 스컹크 트레인은 멘도시노의 아이콘이 됐다. 시속 60㎞의 속도로 달리는데, 경적을 울리며 칙칙폭폭 연기가 피어오르는 순간은 환호성이 터질 정도로 유쾌하다. 고풍스러운 멋이 넘치는 기차는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팝콘과 맥주를 무한대로 먹고 마실 수 있는 패키지부터, 중간 기착지에 내려 일몰을 바라보며 바비큐를 하거나, 인근 노요강(Noyo River) 계곡에서 캠핑을 즐기는 패키지가 있으니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멘도시노 카운티의 자치구인 레겟(Legett)에는 유명한 나무가 하나 있다. 드라이브 스루 샹들리에 트리(Drive thru Chandlier Tree)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로 레드우드 숲 안쪽에 있다. 레드우드가 불탄 자리에 생긴 작은 터널로 차가 통과할 수 있고, 샹들리에처럼 아름다운 형태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무 아래 도착한 사람들의 행동은 한결같다. 중형차가 겨우 통과할 크기의 터널로 조심스럽게 진입한 뒤 차를 세운다. 온전히 열리지 않는 운전석 문틈으로 낑낑대며 내린다. 거대한 레드우드와 한몸이 된 듯한 차를 사진 찍고 다시 올라타 나무 주변을 돌아나간다. 밤이 되면 숲의 정령이 될 것 같은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든다.
훔볼트 카운티 - 잎이 떨어지면 숲이 울린다
북부 캘리포니아 숲길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훔볼트 카운티다. 여기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레드우드 주립·국립공원(Redwood National & State Parks)이 있다. 훔볼트 주립공원은 북부 캘리포니아의 인기 드라이브 코스인 101번 도로를 관통한다. 쭉쭉 뻗은 레드우드가 50㎞ 거리에 빼곡히 늘어선 아름다운 길이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레드우드 주립공원의 록펠러 숲이다.
석유재벌 록펠러의 기부로 보존된 곳이다. 나무 아래 사람들은 마치 소인국에서 온 듯하다. 주립공원 내 가장 키가 큰 나무는 115m. 더러는 생을 다한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데, 이를 지나려면 1분 정도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쓰러진 나무 위에선 옹기종기 새 생명이 자라난다. 짧게는 100년, 길게는 1000년 동안 거름이 돼 새로운 나무들의 영양분이 되는 까닭에 사람들은 이를 유모 나무(nursery tree)라고 부른다. 록펠러 숲에서는 새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낙엽층이 워낙 두꺼워 벌레가 서식하지 못하고, 벌레가 살기 열악한 환경의 레드우드만 밀집해 있기 때문이란다. 덕분에 숲은 적막하다. 바람이 불면 잎이나 잔가지 떨어지는 소리가 숲 전체에 울린다.
훔볼트 국립공원 내의 레이디 버드 존슨 그로브 트레일(Lady Bird Johnson Grove Trail)은 활기차다. 주립공원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레드우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의 나무와 식물이 공존하고 있어서 많은 동물의 터전이 됐다. 그래서인지 훔볼트 레드우드 주립공원보다 더 아늑한 느낌이다.
숲으로 가는 여정에는 바다가 보인다. 마린 카운티의 포인트라이스 국립해안(Point reyes national seashore)에서는 지각운동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변환단층인 샌 안드레아스 단층을 중심으로 서쪽의 태평양판과 동쪽의 북미대륙판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매년 5㎝씩 움직이고 있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 해안선의 모습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110년 전 봄, 두 개의 판 중 하나가 미끄러져 1분 만에 무려 6m나 움직였다. 이 결과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났다. 트레일 코스에서는 지진의 흔적과 지층의 변화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숲길을 따라 걸으면 평행선이 어긋난 펜스가 나타난다. 일렬로 세워져 있던 것이 지진 당시 5m가량 움직였다. 두 판의 경계에는 푸른색 기둥이 늘어서 있다. 이 기둥은 판의 움직임에 따라 매년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트레일 코스를 돌아 나오는 길에 검은꼬리사슴과 마주쳤다. 사람의 움직임을 응시하다 이내 평온한 숲속으로 달아나버린다. 지하 세계에서는 어마어마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지만 지상은 검은꼬리사슴을 비롯한 1500종이 넘는 동식물의 평온한 서식지다.
글래스 비치 - 자연이 다듬은 색색의 구슬
멘도시노 카운티에는 마음 설레는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멘도시노의 앤더슨밸리는 미국을 대표하는 와인 생산지. 지역 내 수많은 와이너리에서 훌륭한 와인을 생산한다. 알자스 버라이탈, 피노누아, 스파클링 와인이 대표적이며 매년 2월과 5월에 와인 축제가 열릴 만큼 규모가 크다.
멘도시노 빌리지에는 1850년대 뉴잉글랜드 지역 사람들이 이주할 당시에 지은 건물의 흔적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마을의 상징적인 건축물은 맥컬럼하우스다. 1882년 집주인이 딸의 결혼 선물로 지은 이 건물은 멘도시노 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로 성업 중이다. 맥컬럼하우스 주변으로 동시대에 건축한 은행, 프리메이슨이 모였다는 집회 장소 등 유서 깊은 볼거리가 많다. 가벼운 동네 산책길은 압도적인 풍광의 해안절벽으로 이어진다. 거대하고 광활한 절벽으로 돌진해 부서지는 태평양의 물안개, 뺨을 때리는 물방울의 촉감, 바람과 물의 소리가 오감을 자극한다.
멘도시노의 포트 브래그(Fort Bragg)에는 글래스 비치(Glass Beach)가 있다. 이름 그대로 유리구슬이 해변을 알록달록 수놓고 있다. 들어보니 사연이 파란만장하다. 이곳은 1906년, 배수 처리장으로 지정된 이후 1943년부터 1969년까지 쓰레기 매립지로 이용되다가 폐쇄됐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버려진 유리병의 모서리는 파도의 물살에 마모돼 색색의 구슬로 모양새를 바꿨다.
스컹크 트레인 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리코세리지랜치(Ricochet Ridge Ranch)는 말을 타고 해안선을 트레킹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목장에서 시작해 왕복 2차선의 도로를 건너 맥캐리처(MacKerricher) 주립공원의 숲길로 들어서는 코스다. 흙과 풀 내음으로 가득하고, 안개 낀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파도소리, 바람소리, 말발굽 소리가 뒤섞여 허공을 울린다.
훔볼트에는 굴이 지천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소비되는 구마모토 굴의 70%가 여기서 생산된다. 카페 콘셉트로 꾸며진 훔볼트베이 방문자센터에서는 굴 요리와 함께 인근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만든 치즈, 지역 양조장의 맥주 등을 판다. 방문자센터 앞의 유레카 올드타운도 둘러볼 만하다. 미국 최대의 국립 사적지로 총 49개의 구역에 걸쳐 쇼핑몰, 식당, 갤러리, 박물관 등이 모여 있다.
샌프란시스코=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여행 Tip
마린 카운티, 멘도시노 카운티, 훔볼트 카운티의 관문은 샌프란시스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를 빌려 타고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 아시아나항공은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직항을 운항한다. 미국 여행을 위해서는 전자여권을 소지해야 하고 미국 여행 허가증인 ESTA를 발급받아야 한다. 90일까지 체류할 수 있다. 운전자는 국제 운전면허증을 지참해야 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16시간 느리다. 전압은 110V. 7월 평균기온은 22도에서 28도 사이로 북쪽으로 갈수록 춥다. 일교차가 심한 편이므로 두툼한 옷을 챙겨가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