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정부 독점이 깨지는 소리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별로 설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비판했다. 대기업 독점의 ‘동물원’이라고. 센터가 대기업과 연계돼 있는 점을 그렇게 비유했다. 안 전 대표는 자신은 지자체 몇 개, 대기업 몇 개를 묶은 광역 단위 소수의 센터를 제안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의 센터가 동물원이면 안 전 대표가 제안했다는 센터도 사이즈만 다를 뿐 동물원이긴 매한가지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건지.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를 반박했다. 조사해 보니 안 전 대표가 말한 그런 독점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최 장관의 설명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독점은 모든 걸 포괄할 수도 있다. 이런 식이면 대기업은 아무 욕심 내지 말고 그저 돈만 대라는 것 아닌가.안 전 대표도, 최 장관도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대기업이 정부 센터에 과연 제 발로 걸어 들어왔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대기업으로서는 독점 논란 자체가 너무 황당하지 않겠나. 그렇지 않아도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엮인 대기업의 처지가 지금 말이 아니다. 수사를 받고 있거나, 구조조정에 직면하거나, 인수합병이 좌절되는 등 자기 코가 석 자인 대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대기업이 아니다. 정부는 부인하고 싶겠지만 ‘창조경제=창조경제혁신센터’가 돼버렸다는 게 잘못이다. 이리되면 창조경제는 ‘정부 독점’이 되고, 센터는 정부 성과를 높이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몰아간 것도 바로 정부였다. 하지만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혁신 캠퍼스를 차리기 바쁘다. 벤처기업 역시 벤처 캠퍼스를 만들겠다고 한다. 대학도 저마다 땅을 내놓고 그쪽에서 돌파구를 찾겠다고 난리다. 이들은 정부 독점을 원하지 않는다. 결국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운명은 민간과 얼마나 차별화한 존재 이유를 찾느냐에 달린 문제다.

정부 독점이 거부당하는 것은 창조경제혁신센터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벌써부터 그랬지만 한국에서도 기초과학 지원조차 정부 독점이 깨지고 있다. 삼성의 미래기술육성재단,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과학재단 등이 그렇다. 정부 지원이 아니라 민간 지원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민간은 정부의 관료화한 연구지원 방식을 배격한다.하물며 혁신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정부가 과학기술전략회의를 통해 ‘9대 국가 프로젝트’를 제시했지만 민간의 반응은 왜 별로일까. 정부의 프로젝트 기획 과정도, 사업 방식도 더는 민간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정부만 이걸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공약이었다며 미래부를 해체해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로 쪼개는 의원 입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정부 조직이 어떻게 과거로 회귀하느냐는 최 장관의 지적은 울림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미래부에 표를 던지는 이도 별로 없다. 영국처럼 ‘혁신 전담부처’가 필요하다지만 그것이 한국에 들어서는 순간 ‘혁신 독점부처’로 돌변한다는 게 문제다.

경제학자 에드먼드 펠프스는《대번영의 조건》에서 ‘국가의 힘’이 아니라 ‘개인의 힘’을 강조했다. 이른바 ‘자생적 혁신’이다. 정부가 변해야 할 차례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