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칼럼] 기로에 선 김영란법, 부패의 원인 근절에 치중해야

졸속·과잉입법 논란 김영란법 28일 시행
선출·고위직 위주 공직의 투명성 높이고
적용범위와 기준 등을 차츰 정상화해야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논란이 끊이지 않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곧 시행된다. 이 법은 사회 상규와 동떨어지거나 민간 자율을 제약하는 무리한 내용을 꽤 담고 있다. 사실 이처럼 포괄적이면서 강력한 반부패 입법례는 찾기 어렵다. 이를테면 부정청탁을 받은 공직자 등의 신고의무 조항은 실효도 없이 범법자만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친인척이나 가까운 친지의 청탁을 신고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윤리문제로 다뤄도 될 사안까지 형벌 대상으로 삼은 점도 과격하다. 강의료와 원고료 규제가 대표적이다. 부패는 은밀하게 진행되므로 ‘공공연한 부패’란 개념은 성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개되는 강의와 기고의 규제는 사적 자치의 침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극소수의 대가성 고액 강의가 마음에 걸린다면 공무원행동강령만으로도 제어할 수 있을 터다.그러면 김영란법은 왜 이처럼 구차하고 저돌적인 내용으로 입안됐을까.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토머스 셸링의 ‘쏠림(tipping)이론’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셸링은 개인들의 행동이 영향을 주고받다 보면 상승작용을 거쳐 사회적으로 엉뚱한 결과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상대가 보낼지 모르니까’ 또는 ‘지난해 받았으므로’ 내키진 않지만 연하장을 주고받는 일이 그러하다. 불법주차가 만연하면 너도나도 서슴없이 불법으로 주차하며, 시끄러운 장소에선 덩달아 목소리를 높이는 게 자구책이다.

쏠림은 바람직한 ‘우등균형’과 그 반대의 ‘열등균형’을 모두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대다수가 꼭 필요한 연하장만 보내거나 주차질서를 지키고 목소리를 낮추면 우등균형에 속한다. 열등균형은 ‘죄수의 딜레마’처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들기 때문에 ‘사회함정’이라고도 불린다. 사회함정은 각자의 최적 전략을 전제로 달성된 ‘내시(Nash)균형’이므로 누구도 먼저 이탈할 유인이 없다. 따라서 어지간한 대책이나 산발 처방으로는 벗어나기 어렵다. 우등균형으로 옮겨가려면 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빅뱅’이 긴요하다.

부패도 예외가 아니다. 뿌리 깊은 접대문화와 지대 추구를 근절하려면 과잉대응(overshooting)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내시균형에선 가치와 규범의 자발적 준수를 기대하는 ‘높은 길’보다 규칙과 절차의 강제 이행을 담보하는 ‘낮은 길’이 효과적이다. 바로 이 점이 가혹한 김영란법의 핵심 논거다. 특히 이 법이 직무 관련성의 범위와 시점을 포괄적으로 확대한 점은 ‘벤츠 여검사’ 무죄 판결 등에 비춰 진일보했다. ‘표현(表見)대리’ 법리처럼 배우자에게 당사자와 같이 무거운 책무를 지운 점도 일리가 있다.김영란법이 사회함정과 우등균형의 기로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자칫 졸속 입법이라는 냉소만 부추기고 사문화되지 않도록 다음 세 가지를 보완해야 한다.

첫째, 김영란법은 모든 공직자를 획일 규제하지만, 핵분열 연쇄 반응과 달리 사회적 쏠림엔 개인 편차가 크다.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소신파가 있는가 하면, 눈치파도 여러 부류로 나뉜다. 따라서 분수령 확보 전략도 유혹이 강한 부서와 직종, 파급효과가 큰 선출·고위·특정직에 치중해야 한다.

둘째, 부패 불감증이 만연한 지금은 필요악이라고 해도 ‘낮은 길’만 계속 따를 수는 없다. 법의 적용범위와 기준 등을 차츰 정상화해 궁극적으론 ‘높은 길’로 전환해야 한다. 부패가 심각한 나라일수록 통제 기구와 인력이 많고 법제도 엄격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셋째, 처벌보다 원인 근절이 우선이다. 부패는 공권력에서 파생되며, 특히 그 폐쇄성과 독점성에 기생한다. 따라서 정부 역할을 줄이고, 공직의 투명성과 경합성을 높이며, 시장친화기제를 확대하는 것이 반부패의 지름길이다.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