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등산화 신고 '인천공항 구하기 100일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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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오피스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59)은 출근 첫날인 지난 2월2일 오전 5시 양복 차림에 구두 대신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뒤죽박죽된 공항 구석구석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서다. 출근하자마자 바로 3층 출국장 체크인 카운터로 뛰어 올라갔다.
"현장에 답있다…공항 구석구석 직접 점검"
취임식 대신 비상경영 선포
수하물 대란·중국인 밀입국 등
인천공항 위상 추락 위기 100일 발로 뛰며 정상화 지휘
교통·항공 요직 거친 '공항맨'
인천공항 기획부터 운영까지 20년간 제반업무 두루 챙겨
출국 대기시간 30분으로 줄여
이왕 일하는 거 신나게
조직 바로서는 비결은 소통…'정감 talk'와 제언마당도 신설
2020년 10대 환승공항 목표
이후 여객 터미널, 수하물 벨트라인, 활주로, 주차장 등 공항 곳곳을 3시간 동안 살펴봤다.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취임식은 생략했다. 대신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발로 뛰자고 전 임직원에게 제안했다.정 사장이 취임식도 포기한 채 공항 현장으로 뛰어간 이유는 잇따른 공항 내 사고 탓이었다. 취임 한 달 전인 1월3일 인천공항은 수하물 5200여개가 뒤섞여 항공기 159편의 출발이 10시간 이상 지연된 ‘수하물 대란’이 벌어졌다. 이어 외국인 밀입국 사건까지 터졌다. 그래서 현장을 돌아보고 어떻게든 빨리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정 사장은 “인천공항은 국제화물운송 세계 3위, 국제여객운송 세계 8위라는 위상을 지켜왔는데 각종 대형 사고로 그동안 쌓아온 인천공항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며 “평소 임직원이 현장을 장악하지 못해 생긴 인재(人災)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출근 첫날을 떠올렸다.
현장 누비는 ‘등산화 사장’정 사장은 ‘현장맨’으로 통한다. 평소 현장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을 정도다. “현장에 가면 답이 있다”는 게 그의 기본적인 경영철학이다.
정 사장은 취임 뒤 100일간 비상경영체제를 유지하며 인천공항을 정상화했다. 비상경영의 핵심은 ‘현장을 장악하고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공항 현장은 아웃소싱 직원이 주로 담당하고, 공사 직원은 사무실에서만 근무한 탓에 현장과의 괴리가 컸다”며 공사 간부들도 하루 두 군데 이상 현장을 돌아보도록 했다.
이뿐만 아니다. 비상경영 선포 후 여객터미널과 수하물 운반시설, 보안검색대, 경비초소, 출입국심사대, 짐 찾는 곳 등 인천공항에 대한 100여개의 세부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매일 취약 시간대인 늦은 밤과 새벽까지 현장을 챙기도록 업무 시스템을 바꿨다. 본부장 등 경영진도 연휴 기간 현장에 상주하도록 했다.그도 당연히 함께 뛰었다. 등산화를 신고 활주로, 주차장, 계류장, 공항저수조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허리 통증이 생겨 한동안 지팡이를 짚고 다닐 정도로 공항을 누볐다. 이런 이유로 회사 임직원 사이에선 ‘등산화 사장’으로 불린다. 비상경영 이후 최대 여객이 몰린 지난 2월 설 연휴, 5월 초 중국과 일본의 황금연휴, 여름 성수기와 이번 추석 연휴 때 인천공항은 여객과 수하물 처리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업무 지시 역시 현장에서 나온다. 그는 지난 4월 공항 출국장을 돌아볼 당시 외국인들이 1시간 반 이상 대기하는 것을 본 뒤 곧바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외국인 투자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대기시간을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후 출입국관리소 등과 협력해 출국심사대를 늘리고 체크인 카운터 오픈 시간도 앞당겼다. 이런 노력으로 외국인 출국 시간을 30분으로 대폭 줄였다.
인천공항 건설~운영까지 챙긴 ‘공항맨’정 사장은 전임 사장 누구보다 공항과 항공 관련 업무를 잘 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토교통부에서 교통항공 분야에 30여년간 몸담았다.
그는 195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용산고를 나와 연세대 경영학과 4년 때인 1979년 행정고시(23회)에 합격했다. 1981년 당시 교통부로 발령받아 김포공항 국제선터미널과 활주로 건설현장 사무소로 파견돼 공항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국토부에서 항공정책과장, 국제항공협력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대표부 참사관, 항공철도국장, 항공정책실장, 교통정책실장 등 교통·항공 분야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년간 인천공항 건설 기획부터 착공, 완공, 운영 등 전반을 챙기기도 했다.
국제항공협력관 당시엔 세계 항공업계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유엔 산하 ICAO에서 한국을 상임이사국으로 만드는 데 산파역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개항 이후 15년간 급성장해온 인천공항을 재정비해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도약시키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직원 간 존중과 배려 중시
그는 직원 간 존중과 배려를 매우 중요시한다. 인천공항공사 조직 개편 때 고객과 항공사를 위한 서비스에 중점을 두기 위해 여객서비스본부와 운항서비스본부를 신설했을 정도다. 공항 입주자지원센터를 개설해 법무부, 세관 등 정부 상주기관과 항공사, 상업시설 등 입주자를 위한 원스톱 서비스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안내, 주차, 청소 등 관련 현장 근무자들이 핵심 서비스 인력인 만큼 협력 업체와 갑을 관계가 아닌 파트너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소통도 중요하게 여긴다. “임직원 간 상호 소통은 조직이 바로 서는 가장 기본적 요소”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스스로 공사 부서를 돌면서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이야기를 한다. 매주 ‘정감 talk’라는 편지를 직원에게 메일로 보내기도 한다. 업무 포털에는 행복갤러리와 제언마당을 신설해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직접 답변까지 해주고 있다. 항상 미소와 웃음을 띠며 임직원을 대하지만 업무에선 빈틈을 보이지 않아 인천공항 임직원 사이에선 ‘외유내강형의 워커홀릭’으로도 불린다.
비상경영체제로 공항을 정상화한 정 사장은 인천공항의 국제 경쟁력과 운영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마트 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전자 결재, 문자 등을 활용한 스마트 업무 확대로 일하는 시간을 20% 단축하고 전사 클라우드를 구축해 모든 데이터를 공유하도록 했다. 지능형 스마트 공항 구현도 단계별로 추진하고 있다.
인천공항 제2 도약 선언
정 사장은 최근 인천공항 제2 터미널 신축과 공항 접근 교통시설을 확장하는 인천공항 3단계 건설사업에 온 힘을 쏟고 있다. 2017년 말 완공 목표로 친환경 및 인공지능 등을 적용한 지능형 공항으로 만들어 승객 편의를 극대화하겠다는 목표다.
그는 3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연간 여객처리 능력은 5400만명에서 1800만명 늘어난 7200만명으로, 화물처리 능력은 450만t에서 최대 580만t으로 증가해 명실상부한 동북아 대표 허브공항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 사장은 “2020년 ‘세계 5대 국제 여객공항, 10대 환승 공항’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허브공항의 핵심인 환승객 유치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서비스 개발에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일영 사장 프로필△1957년 충남 보령 출생 △용산고, 연세대 경영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발전경제학 석사, 영국 리즈대 교통경제학 박사 △1979년 행정고시 합격(23회) △1992년 교통부 항공정책과장 △2000년 건설교통부 국제항공협력관 △2001년 국제민간항공기구 대표부 참사관 △2009년 국토해양부 항공정책실장 △2011년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2016년 2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인천=김인완 기자 i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