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혼자 마신다…tvN '혼술남녀'에 취한 현대인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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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콘텐츠10여년 전만 해도 ‘혼자 술을 마신다’는 말엔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많았다. 혼자 술을 마시는 이들에게 “같이 술 마실 친구 하나 없냐?”고 묻기도 했고, “청승맞다”는 얘기는 물론 “알코올중독 아니냐?”는 의심을 갖기도 했다. 음주문화라는 것이 술 자체의 맛을 즐긴다기보다는 함께 ‘회식’을 즐기는 의미가 더 컸기 때문이다. 친구와 약속을 해도 “언제 소주 한 잔 하자”는 식으로 얘기하곤 했고, 그렇게 만나면 응당 해야 할 일인 것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는 폭탄주 문화에 익숙했다. 술을 음식으로 마셨다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했던 시간(고통스럽더라도)으로 술자리가 기억됐다는 것. 공동체 시대 술 문화의 단상이다.
시청률 5%대…20~30대에 인기
이 시대의 음주문화를 경험한 세대라면 지금의 혼자 마시는 술, ‘혼술 문화’가 주는 신선한 충격에 상호 모순된 양가감정을 느낄 것이다. 폭탄주로 대변되던 폭력적인 술 문화로부터의 탈출이 하나의 판타지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함께 마시는 술이 아니라 홀로 술잔을 기울인다는 행위 자체가 쓸쓸한 느낌을 준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생기는 나홀로족의 문화이기도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생겨나는 가치관의 변화와 이율배반적인 정서도 묻어나는 것이다.tvN ‘혼술남녀’란 드라마는 합리적 개인주의와 쓸쓸한 현대인의 양가감정을 ‘혼술’이라는 문화를 통해 보여준다. 하루 종일 학원가에서 학생들과 씨름해야 하는 스타강사 진정석(하석진)은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혼술을 ‘나만의 힐링타임’이라고 부른다. 혼자 고기를 굽거나 회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혼술의 프로. 그는 자신이 혼술을 할 때 옆 테이블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남녀를 “퀄리티 떨어진다”며 혀를 끌끌 찬다. 싫어도 함께 마셔야 하는 회식 술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는 매회 진정석이 갖가지 미각을 자극하는 안주를 놓고 혼술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혼술이 좋다는 내레이션이 깔리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판타지로 다가오다가 차츰 왠지 그가 너무 쓸쓸해 보인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진정석이라는 캐릭터는 실제로 지독한 개인주의자로서 ‘소통의 단절’을 장애처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입만 열면 ‘고(高)퀄리티’를 떠들어대는 그는 자신이 보기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박하나(박하선·사진)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그렇게 스펙도 없는 ‘퀄리티 떨어지는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는 것. 그래서 그녀에게 괜스레 화를 내고,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소개팅을 하기도 한다. 혼술이라는 개인주의의 표상은 소통의 단절이 만들어내는 어그러진 관계 역시 담고 있다.진정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일하는 학원의 강사들은 저마다 소통 단절을 겪고 있다.
회식으로 대변되던 공동체 문화는 이제 혼술로 대변되는 합리적 개인주의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 바람직한가 아닌가를 떠나서 그것은 시대가 만들어낸 변화의 흐름이다. 우리는 관계의 피곤함을 피해 혼술을 하면서 동시에 혼자 고립된 듯한 쓸쓸함을 느낀다. 이율배반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개인주의 시대의 정서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인간관계 역시 혼술을 닮아가는.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