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도시 이야기-경남 진주 (상)] 조선시대부터 영남 대표 교통 요충지, 국내 실크 80%…'세계 5대 생산지'

역사로 본 진주
진주(晉州)는 삼국시대까지 ‘거타’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거타는 ‘크다’와 같은 말로 ‘큰 언덕’ 또는 ‘큰 벌판’을 뜻하기도 한다. 진주는 삼국시대 가야연맹을 구성하는 6개 소국 중 하나인 고령가야의 고도(古都)였다. 이후 신라 영토로 편입되면서 청주(菁州)와 강주(康州)로 불리다가 고려 태조 23년(940년) 진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30년대 촉석루와 남강 모습
고려 성종 2년(983년)에는 지금의 도청 격인 12목 중 하나(진주목)가 됐을 정도로 진주는 큰 도시였다. 조선시대에도 진주는 안동과 함께 영남을 대표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고종 33년(1896년) 전국이 13도로 개편되면서 진주는 경남 도청 소재지가 됐다. 1925년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경남의 행정·경제·문화 중심지 역할을 맡았다. 경남도청은 지금 창원에 있다.

예로부터 진주는 영남 지역의 교통 요충지였다. 동쪽으로는 함안군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하동군, 북쪽으로는 산청·의령군, 남쪽으로는 사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영남 지역에서 호남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진주를 거쳐야 한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두 차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왜군은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향하기 위해 진주성에 쳐들어왔다. 지금도 광주광역시와 경남 밀양시를 잇는 경전선 열차가 진주를 통과한다. 남해고속도로, 대전~통영 고속도로는 물론 인근에 사천공항까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일제강점기부터 진주는 실크산업이 크게 번창했다. 1946년 문을 연 조일견직은 1970~1980년대 진주에 전국 최대 규모의 실크 제조공장을 갖고 있었다. 진주는 이탈리아 코모, 프랑스 리옹, 중국 항저우, 일본 교토와 함께 세계 5대 실크 명산지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저가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금도 국내 실크 제품의 80%가 진주에서 생산되고 있다.

진주=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