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반포동 빵집서 시작한 파리바게뜨…본고장 프랑스에도 간판
입력
수정
지면A19
파리바게뜨 30년그는 빵집 아들로 태어났다. 엄마 등에 업혀 빵 냄새를 맡으며 자랐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빵을 만드는 아빠 옆으로 가 살았다. 성인이 돼 아버지로부터 회사(샤니)를 물려받았다. 형이 받은 회사(삼립식품)의 10분의 1도 안 됐다. 업무를 파악하자마자 미국으로 빵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빵 냄새만 맡아도 원료의 배합 비율을 추정할 수 있는 전문가가 돼 돌아왔다.
"누구나 빵 만들게 하겠다" 휴면반죽 공급…맛 표준화
간식이던 빵, 주식 위상 높여
10년 만에 베이커리 1위…빵 본고장 프랑스까지 진출
허영인 SPC 회장(사진) 얘기다. 그는 회사를 매출 5조원대로 키웠다. 하지만 여전히 빵에 매달려 있다. “내 꿈은 누구나 빵을 만들 수 있게 하고, 좋은 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허 회장은 이 꿈을 위해 1986년 10월 파리크라상을 세웠다. 이듬해 가맹점인 파리바게뜨를 시작했다. 파리크라상의 30년은 한국 빵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샤니빵집에서 국내 1위로
1980년대 중반 국내 베이커리 시장은 고려당, 크라운베이커리, 신라명과 등 3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었다. 샤니는 ‘후레쉬나’라는 브랜드로 도전했다. 신통치 않았다. 그해 3월 허 회장의 부인이 서울 반포동에 파리크라상이라는 빵집을 열었다. 프랑스식 빵을 구워서 만드는 첫 번째 시도였다. 업계에서는 그냥 취미생활 정도라고 평했다.허 회장은 다른 것을 봤다. 후레쉬나보다 파리크라상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보고 결단했다. 후레쉬나를 접었다. 그리고 파리크라상에 올인했다. 직영은 파리크라상, 가맹점은 파리바게뜨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이 사업을 시작하며 허 회장은 “누구나 빵을 만들게 하겠다”는 꿈을 잊지 않았다. 미국 유학시절 유심히 봤던 맥도날드, 버거킹을 벤치마킹했다. 작업을 표준화하고 본사가 반죽을 공급하는 아이디어였다. 파리바게뜨가 국내 최초로 도입한 휴면반죽 방식이었다. 빵 모양으로 빚은 반죽을 급속 냉동시켜 배송했다. 점포에서는 해동해 구워 팔면 됐다. 기술이 없어도 빵을 만들 수 있었다. 소비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가맹점도 급속히 늘었다. 1997년 파리바게뜨는 국내 베이커리업계 1위로 올라섰다. 2001년 절반 정도 구워서 공급하는 파베이킹 방식을 도입했다. 아르바이트생도 쉽게 빵을 구울 수 있게 했다. 허 회장은 “본사의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로 누구나 빵집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파리바게뜨 성공을 평했다.1990년대 초 허 회장도 다른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편의점 로손도 경영해봤고, 사무정보서비스 전문점인 킨코스도 세웠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파리바게뜨가 급성장하자 빵으로 돌아왔다. 1995년 편의점사업을 코오롱에 매각하고, 몇 년 뒤 킨코스도 팔았다. 선택과 집중이었다.○10년 만에 미국 재도전
허 회장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그는 세계의 제빵왕으로 기록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허 회장의 또 다른 키워드는 글로벌이다. 첫 번째 도전은 1992년이었다. 배스킨라빈스와 합작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봉두-배스킨라빈스 1호점을 냈다. 미국은 공략이 쉽지 않은 시장이었다.10년 뒤 허 회장은 다시 미국 시장에 도전했다. 2002년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3년간 준비했다. 2005년 LA 코리아타운에 1호점을 내고 동부로 넓혀 갔다. 현지인들의 반응을 확인한 뒤 11년이 지난 올해부터 가맹점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전략은 한결같았다. 고급화와 고품질이었다. 2020년까지 미국에 파리바게뜨 매장을 350개 내는 게 목표다.
중국에 나갈 때는 더 신중했다. 1996년부터 시장조사를 해 2004년에야 진출했다. 그해 9월 상하이 1호점을 냈고, 현재 중국에는 가맹점을 포함해 177개 매장이 있다. 중국 전략은 현지 빵집보다 4~5배 많은 종류의 빵을 파는 것이었다. 2012년부터는 베트남과 싱가포르 등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 2014년에는 빵의 종주국으로 여겨지는 프랑스에 매장을 열었다. 2030년까지 미국과 중국에 2000개 매장을 내는 게 허 회장 목표다. 그가 말하는 “매출 20조원을 올리는 그레이트푸드컴퍼니”의 기초도 결국 빵이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