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경부고속도로 버스 참사…"비상구 없는 대형 관광버스가 사고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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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강화유리 창문 있으면 비상구 설치하지 않아도 돼지난 13일 밤 울산 울주군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화재 참사는 버스 옆면이 여닫을 수 없는 통유리로 돼 있는 데다 조수석 쪽 출입문 외에는 비상구가 없는 대형 관광버스의 구조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일한 출입문이 콘크리트 분리대에 막혀 탈출구가 사라지면서 10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안전규칙이 화 불러
14일 울주경찰서에 따르면 사고 버스는 1차로로 달리던 중 2차로로 차선을 바꾼 뒤 진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도로변의 콘크리트 방호벽을 들이받았다. 버스는 방호벽을 두세 차례 들이받으며 100m 이상을 달리다 멈춰섰다. 오른쪽 출입문 아래 연료통에 불이 붙으면서 차가 불길에 휩싸였지만 출입문은 방호벽에 붙어 열리지 않았다.사고로 실내등이 모두 꺼진 데다 연기까지 자욱해 승객들은 비상시 차량 유리를 깰 수 있는 망치를 찾지 못했다. 버스기사 이모씨(48)가 소화기로 운전석 바로 뒤 유리창을 깬 뒤에야 앞쪽에 있던 승객들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뒤쪽에 있던 승객들은 대피하지 못했다.
현행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을 보면 버스를 포함한 승차 정원 16인 이상 자동차는 차체 좌측면 뒤쪽이나 뒷면에 비상구를 설치해야 한다. 사고로 오른쪽 앞 출입문이 막혀도 탈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총 면적 2㎡ 이상, 최소 너비 50㎝ 이상, 높이 70㎝ 이상의 강화유리로 된 창문이 있는 경우 비상구를 설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예외규정이 있다.대부분의 관광버스가 이 규정을 이용해 비상구를 두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대만에서 승객 26명이 숨진 관광버스 화재 사고가 났을 때도 비상문 없이 통유리로 된 버스 구조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은 이날 업무상 과실 치사상 등의 혐의로 버스기사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2차로로 차선을 바꾼 뒤 타이어에 펑크가 나 차체가 기울어졌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1차로에서 달리던 버스가 2차로에 있는 버스 두 대 사이로 급하게 끼어드는 영상을 확보했다”며 “무리하게 차선 변경을 하려다 사고가 났는지를 수사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1988년 이후 음주·무면허 등 총 9건의 도로교통법 위반과 3건의 교통사고 처리특례법 위반 전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경찰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고 버스의 정밀감식을 의뢰했다. 사고 버스는 올 2월 출고된 신차로 이제껏 타이어를 교체한 적은 없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