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지원책 '대수술'] 예산 늘어도 '좀비기업'은 여전…중소기업 지원책도 선택과 집중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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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지원제도 어떻길래 원점 재검토하나인천의 도금전문기업 A사는 지난해 생산라인 효율화를 위해 경영 컨설팅을 받았다. 비용은 금융공기업 지원으로 충당했다. 석 달가량의 현장 조사가 이뤄진 뒤 보고서가 나왔지만 공정을 바꾸진 않았다.
14개 부처·17개 지자체 제각각 예산 투입
중복지원 수두룩…사후관리는 '묻지마'
"컨트롤타워 만들어 선택과 집중 필요"
A사 관계자는 “많은 기관에서 컨설팅 지원 사업을 권유해 시험삼아 한번 받아본 것”이라며 “적용할 만한 게 별로 없었다”고 했다.◆예산 느는데 한계 중기 수두룩
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용역을 통해 중소기업 지원 사업과 예산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것은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성과가 크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각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경쟁하듯 쏟아낸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효율화’ 방향으로 전면 재조정하겠다는 뜻이다.
정부 관계자는 “예산만 낭비하는 겉도는 사업은 정리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 중심으로 지원을 몰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국회예산정책처와 중소기업학회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들어 중소기업 지원 예산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2013년 12조9710억원이던 것이 2014년 13조6491억원, 작년엔 15조2788억원으로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은 8.5%로 국가 예산 증가율(4.8%)의 두 배에 가깝다. 그런데도 제조 중소기업의 적자기업 비중은 같은 기간 16.5%에서 20.8%,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대지 못하는 한계기업 비율도 7.0%에서 9.2%로 오히려 더 높아졌다.
정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약자라는 인식에 대기업과의 동반성장에 초점을 맞춰 여기저기서 지원책을 쏟아내는 바람에 오히려 중소기업 자생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냈다는 평가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지원과 관련해 중소기업청을 비롯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14개 중앙부처가 제각각 제도를 운영 중이다. 여기에 17개 지자체까지 별도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작년 한 해 운영된 중소기업 지원 사업 숫자만 총 1287개에 달했다.
◆중복지원 많고 성과 평가 없어지원은 넘쳐나는데도 “정작 필요한 곳에 돈이 오지 않는다”는 중소기업 불만도 정부가 지원책을 재검토하게 된 배경이다. 이번 기회에 중복사업을 정리하고 지원에 따른 효과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쭉정이’ 사업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이 비슷한 중소기업 정책은 수두룩하다. 중소기업 제품 수출을 돕기 위한 온라인 마켓은 중소기업진흥공단(고비즈코리아), KOTRA(바이코리아), 한국무역협회(트레이드코리아) 등이 따로 운영하고 있다.
김종훈 전 새누리당 의원은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중소기업 수출지원 사업만 408개에 달하지만, 정작 정부는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지원해준 뒤 ‘사후관리’가 안 되는 것도 문제다. 정책별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효과도 모르는 ‘깜깜이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적에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기업 경쟁력이 높아졌는지는 매출, 영업이익 등 재무제표를 참고하면 되지만 실제 지원을 받은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묻지마 중소기업 지원정책’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중기 지원도 선택과 집중 필요”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중소기업 지원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가능성 있는 기업을 뽑아 집중 육성하는 게 효용이 가장 높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우선 사업별 평가부터 제대로 한 뒤 버릴 건 버리고 예산을 ‘선택과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장은 “부처별 정책을 융합해야 하는데 중소기업 정책은 컨트롤타워가 없어 제각각 가고 있다”며 “과거 대통령 직속 중소기업위원회 같은 조직을 구성하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지원책을 효율화하는 과정에서 정부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한계기업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이를 감내해야 한다”거나 “특혜 시비를 우려해 정부가 되도록 많은 기업에 소액을 나눠 지원하는 관행도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재광/김재후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