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실험과 진화 이끈 거장 6인6색

장우성·허건·손재형·서세옥·이종상·민경갑

내달 18일까지 관훈동 세종화랑서 특별전
서울 관훈동 세종화랑에 전시된 남농 허건의 ‘강촌하일(江村夏日)’.
평화로운 강변에 아침 햇살이 뜨겁다. 목포 유달산에서 나와 오른쪽의 야트막한 영산강변을 휘돌아 나가는 작은 섬들이 나직하게 이어지고, 산에 빼곡히 늘어선 소나무 사이엔 청아한 기운이 절정을 이룬다. 강변에 깔린 해무는 간접조명처럼 유달산을 환하게 껴안는다. 근대 한국화의 대가인 남농 허건의 ‘강촌하일(江村夏日)’은 온 남도의 여름을 마음껏 보여준다.

남농의 산수화를 비롯해 소전 손재형, 월전 장우성, 산정 서세옥, 일랑 이종상, 유산 민경갑 등 한국화 대가들의 작품 30여점을 모은 특별전이 20일 서울 관훈동 세종화랑에서 개막했다. ‘한국화를 빛낸 화사(畵師) 6인’ 특별전이다. 전통 수묵채색화를 근대적 양식으로 재창조한 남농, 강렬한 준법으로 독특한 서예 세계를 구축한 소전, 한국 회화의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월전,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변신을 거듭한 산정·일랑·유산의 그윽한 예술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근대적 실경산수를 이끈 남농은 남도의 아름다움을 품격 있게 그려냈다. 1962년작 ‘군자락지(君子樂之)’는 남농이 한국적 회화를 정립하려던 시절의 작품으로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군자의 굳은 의지를 상징하는 괴석과 절개를 은유하는 소나무가 대조를 이루며 대가다운 솜씨를 드러낸다. 수풀로 뒤덮인 산 아래 강변에서 낚시를 드리운 군자를 소재로 한 ‘추강안일행(秋江雁日行)’ 또한 역작이다.

정형적인 화면 구도 위에 골격미가 돋보이는 필세를 통해 고고한 정신세계를 추구한 손재형의 글씨도 관람객을 반긴다.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장관 집무실에 걸어 뒀던 ‘화기만당(和氣滿堂·화목한 기운이 집에 가득함)’은 붓을 뉘어 주름진 형상을 표현하는 몰골준법을 활용한 글씨다. 소전 특유의 암골미(岩骨美) 넘치는 손맛이 녹아 있다.

대표적인 근대 채색화가 장우성의 예술적 열정도 만날 수 있다. 도봉산 쪽에서 북한산 백운대를 리얼하게 잡아낸 1980년작 ‘조화(調和)’, 참새와 개나리를 담백하게 그린 ‘명춘(鳴春)’은 일본 채색화의 한계를 뛰어넘은 한국 채색화의 참맛을 보여준다.한국화의 현대적 변용을 추구한 산정, 일랑, 유산의 작품도 여러 점 나왔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후학 양성에 힘쓴 이들의 작품은 ‘화사’다운 운치를 더해준다. 5만원권 지폐의 신사임당을 그린 일랑의 ‘독도’는 40년 가까이 독도문화심기운동을 펼친 그의 열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먹물을 번져 나가게 하는 발묵의 맛과 한지의 질감을 살린 공간감이 독특하다.

1만권의 책을 읽고 한시를 자유자재로 짓는 전통 한국화가인 산정의 작품 ‘원앙’은 1970년대 초 문자도를 시도하기 전에 작업한 것으로, 부부의 금실을 은유적으로 묘사했다. 1960년대 한국화로는 처음으로 국전에 추상작품을 출품해 최연소 추천작가로 데뷔한 유산의 산 그림도 소개된다. 한국화이면서 서양화 같은 그의 산 그림은 빨강 노랑 초록의 원색을 통해 색다른 화려함을 선사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정준 세종화랑 대표는 “한국화 대가들의 예술 세계와 작품을 통해 근대 이후 한국화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달 18일까지. (02)722-221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