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단색화가' 잡아라…화랑가 마케팅 가열

문화 현장 생생 리포트

미술시장 쥐락펴락한 단색·추상화
김태호·오세열…차세대 30명이 뛴다

갤러리 현대, 김기린·신성희·이건용·이승택 라인업
국제갤러리는 김용익·권영우·최욱경 국내외 마케팅
노화랑 김태호, 선화랑 이정지, 학고재 오세열 '낙점'
지난 16일 폐막한 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 16점을 판매해 주목받은 단색화가 김태호 씨.
김환기를 비롯해 정상화, 박서보, 이우환, 정창섭, 윤형근, 하종현 등 이른바 ‘단색화 칠총사’의 지난해 경매 낙찰액은 1100억원으로 전체 낙찰총액(1880억원)의 59%를 차지했다. 올 상반기에도 이들의 낙찰액은 500억원대에 육박하며 낙찰총액(964억원)의 50%를 넘어섰다. 2013년 이전만 해도 10% 이하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액수다. 단색화의 인기가 고공 행진을 하자 상업화랑들은 그동안 저평가된 단색화는 물론 단색계열 추상화로까지 마케팅 영역을 넓히며 새로운 작가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유명세를 타고 있는 유명 작가의 경우 유통되는 작품이 극히 적은 데다 가격도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작가 유치전화랑업계는 변화 속도가 비교적 빠른 미술시장 특성상 새로운 작가를 찾지 못하면 시장 흐름에 뒤질 수도 있다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른바 ‘골든타임’ 앞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단색화의 세계화를 선도한 국제갤러리는 박서보와 하종현 화백을 전속작가로 영입한 데 이어 권영우와 김용익, 색채 추상화가 최욱경을 국내외 시장에 알리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다음달 6일까지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김용익, 30일 유작전을 끝낸 최욱경 작품이 이미 국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만큼 국제시장 판로를 개척한다는 전략이다.
그동안 단색화 거장 정상화와 색면추상화가 유영국에게 역량을 집중해온 갤러리 현대는 최근 들어 모노그롬 회화의 선구자 김기린을 비롯해 전위미술가 이승택, 행위미술가 이건용 서세옥 윤명로 곽인식 신성희 방혜자 노상균 등을 라인업해 마케팅에 승부를 걸고 있다. 올해 서세옥과 이승택 이건용 신정희의 개인전을 차례로 열어 판매망을 확충한 현대는 지난 26일부터 김기린의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1960~70년 작품 30여점을 걸었다.
노화랑은 일찌감치 ‘포스트 단색화가’로 주목받고 있는 김태호를 ‘낙점’해 놓은 상태다. 지난 3월 런던 최대 화랑인 화이트큐브갤러리 큐레이터를 초청해 김태호 작품을 대대적으로 홍보도 했다. 지난 16일 폐막한 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는 그의 작품 16점을 7억원대에 팔았다. 노화랑은 내년에는 서승원을 끌어들여 대규모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선화랑은 여성 단색화가 이정지와 추상화가 곽훈을 전략작가로 제시했다. 특히 국내 여성으로선 드물게 단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이정지 작품을 연중 상설전 형대로 마케팅하는 데 ‘올인’하고 있다. 학고재화랑은 여러 번 덧칠한 화면에 숫자를 수놓은 오세열과 ‘백색화가’ 이동엽에게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내년 1월에는 오세열 개인전을 열어 시장 반응을 점검할 방침이다.지난 3월 서울에 지점을 연 프랑스 화랑 페로탱갤러리(이승조), 아라리오갤러리(김구림 이강욱 허명욱), 리안갤러리(하태범 남춘모), 더페이지갤러리(김춘수 최명영), 우손갤러리(이강소), 갤러리 시몬(문범)도 유망한 작가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 작품값 20~30% 상승

국내외 컬렉터들이 차세대 단색화가와 유망한 단색화 계열 추상화가들의 작품을 사들이면서 가격도 크게 치솟고 있다. 색면 추상화가 유영국의 100호 크기 ‘무제’(2억~5억원)를 비롯해 이성자 최욱경(2억원), 이응노 남관 이승조(1억~1억5000만원), 서세옥(1억~1억5000만원), 윤명로 곽인식 하인두(1억원), 김태호(1억1000만원) 등의 작품은 올해 들어 최고 20~30% 오르며 1억원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김기린 이강소(7000만~1억원), 곽훈(5000만원), 유희영(5000만원), 함섭(3000만~5000만원), 이두식(1000만~1500만원) 등의 작품도 서울 인사동 등 화랑가에서 작년보다 10% 이상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미술시장 전문가들은 대체로 단색화는 물론 단색화계열 추상화의 인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미술시장의 중심축이 추상화로 이동하고 있는 영향을 국내 시장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국제 시장에서 미술관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데다 세계적 컬렉터들이 지속적으로 추상화와 한국 단색화를 구입하고 있어 비교적 저평가된 추상화가들이 미술시장 테마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