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바꾼 박근혜 대통령 인사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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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의혹' 보도 20시간 만에 사과·5일 만에 참모진 개편박근혜 대통령의 30일 청와대 참모진 개편 인사는 ‘최순실 씨 국정개입 파문’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 뒤 닷새 만에 나왔다. 박 대통령의 평소 인사스타일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신속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핵심 참모들을 모두 교체키로 결심하기까지 참모진과 정치권의 요구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정치권 요구를 수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정현·정진석 독대, 원로들 의견 수렴
모양새 갖춘 뒤 전격 단행
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저녁 최씨에게 대통령 연설문 등이 사전 유출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지 약 20시간 만인 25일 오후에 기자회견을 자청해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시인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날 저녁 이원종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김재원 전 정무수석 등은 ‘일괄사표 제출’을 주장했으나 우병우·안종범·김성우 전 수석 등은 “일괄사표는 대통령을 버리고 우리만 떠나겠다는 것 아니냐”며 반대했다. 참모진은 뜻을 모으지 못했고, 갈등만 커졌다.박 대통령의 미흡한 사과로 인해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고 국민 사이에서 탄핵·하야(下野) 요구까지 쏟아졌다. 인적쇄신 등 수습책을 묻는 기자들에게 청와대 측은 28일 “대통령께서 숙고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최씨 사태에 연루의혹이 제기된 우병우·안종범 전 수석과 ‘문고리 3인방’ 가운데 일부를 교체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오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90분간 독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사폭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저녁에는 정진석 원내대표와도 비공개로 만나 당의 강력한 쇄신요구를 들었다. 밤 10시33분께 정연국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사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조만간 청와대 참모진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는 문자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전국적인 촛불시위가 예고된 29일.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새누리당 상임고문단 8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수습책을 논의했다.
30일 오후 2~3시 이홍구 전 총리, 고건 전 총리, 조순 전 서울시장 등 시민사회 원로 12명과도 만나 ‘쓴소리’를 들었다. 그로부터 2시간여 뒤, 박 대통령은 핵심 참모를 모두 교체하는 결단을 내렸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