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대통령 담화 이후 정국 시나리오는

① ‘김병준 총리’ 카드 밀어붙이기
② 거국내각 구성 뒤 2선 후퇴
③ 야당 주도 탄핵 추진 및 전격 하야 선언

어느 것 하나 선택하기 쉽지 않아
거국내각, 위헌 논란 부를수도
탄핵·하야 땐 대선 구도 유불리 점치기 어려워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지난 4일 대국민 담화를 했지만 정국 수습은 멀어 보인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국정운영을 주도하겠다는 뜻을 확인했다. ‘김병준 책임총리 카드’로 돌파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은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고 2선 후퇴하라는 목소리를 한층 높이고 있어 정국 향방을 점치기 더욱 어렵게 됐다.야당의 반발 강도로 봐선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카드를 관철시키기는 어렵게 됐다. 박 대통령이 책임총리제를 공개적으로 확약하고, 경제·사회 부문을 총리에게 맡기겠다고 하는 정도의 수준으로는 정국을 수습하기엔 미흡하다는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야당 지도자들을 만나 설득에 나서겠다는 게 청와대의 방침이다. 김 후보자도 자진사퇴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야당은 김 후보자 지명 철회가 정국 수습의 첫 단추라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양측간 시각차는 뚜렷하다. 청와대는 김 후보자 인사청문 요청서를 준비하고 있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김 후보자에 대한 청문 요청서가 접수되면 그때부터 야당과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청문 요청서가 오더라도 청문 절차 자체를 보이콧하기로 합의한 상태여서 현재로서는 통과 가능성이 희박하다.

거대야당이 끝까지 김 후보자를 ‘비토’ 하게 되면 김 후보자는 결국 사퇴할 수 밖에 없다. 총리 인준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의원 과반 이상의 찬성이 팔요하기 때문에 야당이 반대하면 ‘김병준 총리 후보’ 카드 관철은 불가능하다. 김 후보자도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총리 인준이 되지 않으면 총리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박 대통령이 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여야가 합의해 총리를 추천한 뒤 총리에게 실질적인 내각 구성권을 주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총리는 내치, 대통령은 외교·안보 등 외치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헌정질서를 유지하면서 대통령과 총리가 공동으로 국정을 이끌어가는 방법이다. 이원집정부제, 분권형대통령제를 시험해보는 측면도 있다.거국내각 구성에 문제점도 있다. 위헌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헌법 86조2항엔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이 내정에서 손을 떼라는게 야당의 요구인데,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국민의 선거로 통과된 헌법은 대통령과 정치권의 타협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의 대통령의 권력 이양은 지나친 요구라는 지적도 있다. 물론 형식적으로 대통령이 총리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로 국정운영을 하는 방안은 있다. 대통령제 하에서 일종의 편법이다.

그렇지만 자칫 대통령의 국정운영 위임 범위를 놓고 갈등이 벌어질 공산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 대해선 “내가 챙기겠다”고 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국정운영 주도 의지를 밝힌 만큼, 총리에게 실제 내정 전권을 이양할지 미지수다. 외교·안보 분야 등은 대통령에게 맡긴다고 하지만 힘이 빠진 대통령이 북핵 및 미사일 도발 위협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야당 일각에선 대통령에게 외교권 마저 내려놓으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여야간 거국내각 주도권을 두고 갈등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여야가 실질적으로 함께 참여하는 거국내각을 시행하면 주요 국정현안을 두고 갈등이 벌어지면서 국정운영이 표류할 공산이 크다.거국내각을 시행하면 야당도 국정운영에 대한 공동책임을 지는 만큼 부담이 크다. 내년 대선 때까지 여권의 실정을 공격하는 게 효과적인 전략인데, 거국내각을 하면 그게 불가능해진다. 새누리당이 거국내각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이후 야당이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인 이유다.

박 대통령이 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지 않고, 2선 후퇴도 않을 경우 야당 주도로 대통령 탄핵 과정을 거칠수도 있다. 탄핵 시나리오는 최후의 수단이다. 의석 분포상 야당이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관철시키기 쉽지 않다. 그 후폭퐁이 어디로 불지 가늠하기 어렵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한나라당은 ‘폐당’위기에 몰렸다. 재적의원 3분의 2(200명) 이상 찬성해야 탄핵이 가능하다. 새누리당 의원은 129명이다. 새누리당 의원 29명 이상 찬성해야 탄핵이 가능한데 불투명하다.

탄핵안이 국회를 넘더라도 변수는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를 거쳐야 한다.헌재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헌재 재판관 9명 전원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 탄핵안이 헌재 문턱을 넘기가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박 대통령이 내각 구성권을 잃고 막다른 길에서 하야의 길을 택할 수도 있다. 하야 하면 60일내로 차기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한 의지를 밝힌 만큼 하야의 길을 택할 가능성이 적다는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하야 땐 대선판이 요동칠 전망이다. 여야 어느측에 유·불리를 점칠 수 없는 만큼 야당이 하야를 선뜻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분당될 가능성이 있다. 비박(비박근혜)계가 탈당해 제3지대와 손을 잡을 수 있다. 야권의 유력주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게 반드시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야권의 제3후보들이 ‘반문재인’구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초에 대선을 치르게 되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해 검증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대선에 임하게 될 수도 있다. 야권으로선 불리한 구도다.

물러나게 돼 있는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는 ‘우스운’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황 총리가 권한대행으로서 대선을 관리해야 하는 것은 야당으로선 결코 달갑지 않은 모양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