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리더십 '위기'] 정치 실종…'대선 셈법'만 난무

국정 마비 해법 안보여

청와대 공황상태…여야 영수회담 7일 제안
여당 자중지란…내분 격화 '식물정당' 전락
야당 오락가락…거국내각·하야·탄핵 '눈치'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두 차례 사과했지만 악화된 민심을 수습하는 데 실패했다. 민심을 거스른 잇단 ‘헛발질’로 대통령이 리더십을 상실하면서 청와대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시민 약 20만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4만5000여명)이 촛불시위를 벌이는 비상시국 사태를 맞았지만 정치권의 수습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실종됐다.

새누리당은 집안싸움으로 날을 새는 ‘식물정당’이 됐고, 야당은 혼란을 수습하기보다 대규모 장외투쟁을 예고하며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가 터진 지 2개월 가까이 됐지만 청와대와 여야는 머리를 맞댄 적이 없다. 사태 수습을 위한 여야 영수회담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이 하야라도 하면 물러나게 돼 있는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해야 한다. 한마디로 총체적 국가 리더십 공백 사태를 맞았다.무엇보다 청와대는 위기상황에서 매번 타이밍을 놓치고 수습 내용도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과 이달 4일 ‘최순실 파문’과 관련해 두 차례 사과했지만 민심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6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 대해 ‘수용하기 어렵다’가 57.2%로 ‘받아들이겠다’(38.4%)보다 많았다.

정치권과의 소통 없이 던진 ‘김병준 총리 카드’는 정국을 더 꼬이게 했다. 한광옥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과 허원제 정무수석은 7일 국회를 찾아 야당 지도부를 만나 여야 영수회담을 공식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야당 측은 김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회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청와대는 야당 설득에 주력할 방침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박 대통령이 탈당하고 거국내각 수용 카드를 던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실장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광화문 광장에서 보여준 국민의 준엄한 뜻을 매우 무겁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여당 기능을 상실한 ‘의사 무능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순실 파문’ 이후 지도부 책임론을 둘러싼 자중지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입으로는 ‘풍전등화’라면서도 수습보다는 주도권 쟁탈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야당은 갈팡질팡했다. ‘문건 유출’ 파문이 일자 야당 대선주자들은 일제히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장 먼저 나섰다. 막상 새누리당이 거국내각 카드를 수용하자 문 전 대표는 “짝퉁 내각으로 위기를 모면할 심산”이라고 반대했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2차로 사과하자 김 후보자 지명 철회 및 국회 추천 총리 수용, 대통령의 2선 퇴진을 요구했다. 이번엔 거꾸로 ‘변형된 거국내각’을 요구한 것이다. 의원 22명은 이날 청와대 앞 분수광장을 찾아 의원 47명 명의의 기자회견을 통해 “박 대통령이 여야가 합의한 총리에게 전권을 넘기고 국정에서 즉각 손을 떼야 한다”고 촉구했다.

야당이 오락가락한 것은 거국내각과 대통령 탄핵 및 하야를 두고 득실에 대한 교통정리가 제대로 안 됐기 때문이다. 거국내각을 수용하면 향후 국정 운영에 공동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 민주당은 오는 12일 서울에서 전국당원보고대회라는 이름으로 1만명 이상의 당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 계획이다. 대선주자들은 대통령 2선 후퇴, 거국내각, 하야 등 다양한 주장을 쏟아내며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에 급급하다. 위기상황에서 국익보다는 정치적 셈법만 난무하고 있다.

홍영식 선임기자/장진모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