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괴발개발] "식권 없애려다 황태집에서 1시간 혼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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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안 다녀본 청년들이 바라본 식권문화아이를 낳는 기분.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모바일 서비스를 처음 세상에 선보일 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스마트폰 속 앱들은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왜 태어났을까. 세상에 아무렇게 쓰는 앱은 있어도 아무렇게 만들어진 앱은 없다. 'Why not(왜 안돼)?'을 외치는 괴상한 IT업계 기획·개발자들. [박희진의 괴발개발]에서 그들의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불편하고 비효율…종이식권 스마트폰에 넣자
국내 최초 모바일 식권 서비스 '식권대장'
"한국인 情 담긴 식권…밥짓고 먹는 일 더 즐거워졌으면 "
황태구이집 이모가 날린 '돌직구'는 강력했다. 다른 회사 직원을 사칭한 죄로 1시간동안 꼼짝없이 붙잡혀 혼쭐이 났다. 가시 돋친 이모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무명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직원의 가슴을 후벼팠다."잘못을 한 건 맞는데 정말 악의는 없었어요. 해당 회사에 동의를 구한 일이기도 했고요. '왜 그랬냐'며 다그치시는데 많이 서러웠죠. 결론적으로 지금은 그 식당이 저희 가맹점 중 한 곳이에요. 이모님이랑도 친합니다.(웃음)"
상가 번영회를 공략해야한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번영회 회장과 핵심 인물들의 마음을 얻으면 가맹점 수십개를 한 번에 얻을 수 있었다. 번영회 모임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달려가 다과 테이블을 차렸다.
"듬직하게 보이려면 검은색 정장은 필수입니다." 신재윤 벤디스 영업팀장이 어깨를 젖히며 말했다. 모바일 식권 서비스 '식권대장'이 1000여개 가맹 식당을 두기까지 그가 했을 숱한 고민이 느껴졌다.
시작은 식권이 아니었다. 한 기업 사내 모바일 결제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중 모바일 식권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전까지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었던 한선호 벤디스 최고기술책임자(CTO)의 눈엔 사람들이 종이 식권으로 밥을 먹는 게 불편해 보였다.
"처음 회사의 주문은 사내 카페, 기념품점, 헬스클럽을 이용할 때 장부 대신 모바일 결제를 쓰게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밥을 먹을 때도 이런 게 있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볍게 베타(시제품) 버전으로 만들어 봤는데 운좋게 고객사 2곳이 서비스를 쓰겠다고 했죠."기대를 안고 2014년 1월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부터는 '맨땅에 헤딩'이었다. 1년간 고객사가 더 늘지 않았다. 강남역, 역삼역 주변 아무 빌딩이나 들어가서 대뜸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밀크(식권대장 전 명칭)입니다."
"인사도 잘 안받아주시는데 모바일 식권 개념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으니 누가 들어주시겠어요. 저희가 이름 있는 유명한 회사도 아니니 처음에 접근하는 게 힘들었죠. 그래서 식당과 거래를 하고 있는 회사에 허락을 맡고 그 회사 직원인 척을 했어요. 모바일 식권으로 바꿔보지 않겠냐고요. 그러다 정체를 들켜 혼났죠."(신 팀장)
기업과 식당 모두를 설득해야 했다. 양쪽을 비교하자면 식당을 상대하는 일이 훨씬 어려웠다. 기업은 비용, 효율성을 강조하면 됐다. 난관은 변화를 거부하는 식당 점주들이었다. "가맹점주 평균 연령이 55세입니다. 변화를 좋아하지 않으시죠. A4용지에 한 달치 식권을 풀로 붙여 정산하는 게 익숙한데, 왜 스마트폰을 써야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죠. 그럴 땐 사장님들과 친해져서 정에 호소하는 것도 방법이에요."(신 팀장)
동정심 유발 전략에 넘어가 식권대장을 쓰기 시작한 식당과 회사엔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종이 식권이 스마트폰 안에 들어가면서 달라진 건 편리함뿐이 아니었다. 한 달에 1500만원, 1년에 2억원 가까이 식대를 줄인 회사가 생겼다. 식당은 직접 영업 없이도 새롭게 연결되는 회사가 늘어 매출이 증가했다. 식권을 쓰는 직원들은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 늘어나면서 점심시간이 더 즐거워졌다.
"'식권깡'이라고 아세요? 식권을 현금으로 바꿔가는 걸 말합니다. 심지어 밥을 안먹고 식권을 생필품이나 식재료로 바꿔가는 경우도 있대요. 유효기간 지난 식권을 내는 사람, 야근 안하고 식권 쓰는 사람은 더 많고요. 식권대장은 사용시간과 내역이 투명하게 기록되니 기업 입장에선 이런 식권 오남용을 막을 수 있죠."(한 CTO)
"자영업자들이 편하게 장사하고 수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가맹 식당의 80%가 3년도 안돼 폐업을 해요. 문을 닫게 돼 서비스를 못 쓴다는 전화를 받을 때 마음이 안좋죠. 가맹 식당과 계약을 맺고 난 뒤엔 주변 새로운 회사들을 고객사로 유치해 추가 매출을 확보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신 팀장)
'망해도 여한이 없다'란 생각이 들 때즈음 좋은 일이 생겼다. 2015년 2월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로부터 7억원의 초기 투자를 유치한 것. 투자를 받고 서비스가 자리를 잡으면서 회사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4명이던 회사 식구가 27명으로 늘어났고 사무실도 옮겼다. 이 시기에 합류하게 된 장준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출근 시간 조정과 근태관리였다. 그가 벤디스에 온 지 얼마 안돼 '장쌤'이란 별명을 얻은 이유다.
"제가 회사 느낌이 나도록 많이 뜯어고쳤어요. 처음 여기 왔을 땐 회사보다 대학교 동아리 느낌이 강했어요. 물론 장점도 있었지만 회사가 더 크려면 바뀌어야할 부분이 많았죠.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출근 시간이었어요. 기업을 고객으로 둔 기업간 거래(B2B) 회사면서 출근 시간이 10시라니요. 직원들과 싸워서라도 출근 시간을 앞당겨야 겠다고 생각했죠."
"투자를 받고 나서 책임감과 부담감이 많이 생겼죠. 인력을 충원하다 보니 이제 회사에 가정을 책임지는 아버지도 생겼어요. 예전엔 제가 영업팀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었는데 이제는 서열이 한참 밑으로 내려갔어요.(웃음)"(신 팀장)
한 CTO는 요즘도 신 팀장이 가맹점을 찾을 때 자주 동행한다. 가맹점에 직접 앱 설명서와 식권대장 앞치마를 전달하고, 이용자들이 앱을 쓰는 모습을 꼼꼼히 눈에 담는다.
"한 번은 식당 이모님이 글자가 너무 작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입장에선 '이게 왜 안보이지?' 라고 생각할 만큼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죠. 사실 다른 앱보다 글자가 큰 편이기도 했고요. 사무실에서 회의할 땐 지금 글자도 너무 커서 안 예쁘다는 의견이 있었거든요. 직접 현장에 나가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에요."
회사를 다녀본 적 없는 이들이 직장인 식사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게 도움이 됐다.
"그거 아세요? 부장님들은 식권을 잘 안들고 다니세요. 보통 사원 한 명이 식권을 거둬 한 번에 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종이 식권도 모아서 내던 분들이 한 명씩 스마트폰을 들고 결제하는 일을 좋아하실 리가 없죠. 그래서 모바일 식권을 한 사람이 모아 결제할 수 있는 '함께 결제' 기능을 넣은 거에요."(한 CTO)
그들은 식권에 한국인의 정(情)과 밥에 대한 애틋한 정서가 담겨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밥은 먹고 일해라'는 마음이 식권이나 장부 문화로 이어졌을 것이란 얘기다. 식권을 주고 받는 사람들 모두 더 편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누구나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바꿀 수 있는 능력 한 가지는 갖고 있다고 믿어요. 그 능력을 깨워 발현시켜줄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고요. 벤디스 직원들이 나중에 다른 곳에 있더라도 '식권대장'을 만들었던 경험을 행복하게 기억했으면 좋겠어요."(장 COO)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