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GO] '경단녀' 어머니‥월 60시간만 일하는 이유

청년에만 집중된 서울시 뉴딜 일자리
퇴직금 없고, 최저시급 언저리 '경단녀 뉴딜'
민간 취업 힘들지만 "그래도 다시" 현실 속으로
국내 경력단절여성(경단녀) 수는 자그마치 200만명이 넘습니다. 기혼 여성 5명 중 1명 꼴입니다. 결혼과 임신 육아로 직장 경력이 단절된 누군가의 아내, 엄마들 말입니다.

지난 9월 만난 이은주 씨(50·가명)는 스무살 딸을 둔 '경단녀'입니다. 일을 놓은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특별하게 잘 하는 것도 없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엔 나이가 많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 돈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가 걱정인 늙고, 뒤쳐진 아줌마라고 자신을 표현했습니다.그런 그가 얼마 전 서울시 '뉴딜일자리'를 통해 직업을 얻었습니다. '뉴딜일자리'란 시민들을 위한 공공서비스를 찾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취업 준비생, 경력 단절 여성 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직무교육 후 민간 취업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죠.
20년 만에 다시 사회로 나왔지만 다시 걱정이 앞섭니다. 서울시 지원이 끝난 후에는 다시 경단녀가 되기 때문이죠. 서울시 취지대로라면 공공일자리 이후 관련 민간으로 옮겨야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았습니다. 뉴스래빗이 '뉴딜일자리'의 문제점을 찾기위해 사회로 나온 경단녀들의 하루를 따라가봤습니다.

#1. '월 60시간'만 일하는 이유지난 9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A씨(58·여)를 만나봤습니다. 그는 여성이나 청소년을 안전하게 집까지 바래다주는 일을 합니다. 평일 밤 10시부터 새벽 1시(월요일만 자정까지/주말 공휴일 제외)까지 안전한 귀가를 책임집니다.

이 직업은 '서울형 뉴딜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고안됐습니다. 늦은 시간 귀가하는 여성들이 지하철역 도착 30분 전에 120 다산콜센터나 자치구 상황실로 전화하면 자치구별 16~27명 정도인 스카우트 대원들이 2인1조로 마중 나가 집까지 데려다 주는 서비스입니다.
이 제도는 40~50대 경단녀의 일자리 확보와 자치구 치안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에 따라 마련됐습니다. 스카우트 대원 중 여성의 비율은 85% 정도로 높아졌습니다.하지만 스카우트 대원들의 안전 확보는 물론, 위험수당이나 퇴직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스카우트 대원은 1시간 6500원, 최저임금(6030원) 언저리의 돈을 받습니다. 매달 63만 원 정도입니다. 한달 최대 근로시간은 60시간을 넘을 수 없습니다. 60시간이 넘으면 퇴직금 지급 대상이 됩니다. 서울시는 퇴직금 예산을 줄이기 위해 한달 60시간 미만 근무만 시킵니다. 새벽 1시까지인 평일 안심 귀가가 유독 월요일만 1시간 짧은 자정에 끝나는 이유입니다.

A씨는 이 일에 대해 "봉사 정신이 없으면 일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는 "여성 안심귀가스카우트는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동시에 여성에게 적합한 신규 일자리도 만들어내는 '서울형 뉴딜일자리'의 대표 사업"이라고 평가합니다.

#2. "시급 6250원, 그래도 다시"
B 씨는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아동돌봄' 도우미로 6개월째 근무 중이다.
지난 달 17일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지역아동센터. 이 곳에서 '아동돌봄'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B씨(50·여)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걱정합니다.

아동돌봄 도우미는 지역아동센터 아동에 대한 학습 및 생활지도 지원, 지역아동센터 운영 지원 등의 일을 합니다. 아이들의 학습지도가 가능해야 하며 학습관련 자격증 및 관련학과 졸업자, 경력자를 위주로 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근무시간은 신청한 지역아동센터 특성 고려해 11시~20시 사이 협의 후 결정)하고 그가 받는 일급은 고작 2만5000원에 불과합니다.

시급으로 따지면 6250원입니다. 시간당 최저임금(6030원)보다 220원 많습니다. B씨는 그래도 "급여는 적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뉴딜일자리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간일자리 취업이 그만큼 힘든 탓입니다.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가진 B씨는 다시 보육교사로 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면접 기회조차 얻기 힘듭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마다 20~30대 젊은 여성을 선호하기 때문이죠.

#3. 경단녀 뉴딜, 양보다 질 고민할 때

서울형 뉴딜일자리는 2013년부터 매년 2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일자리정책입니다. 올 2월 서울시 감사위원회의 '서울형 뉴딜일자리사업 감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실질적 사업성과로 볼 수 있는 '뉴딜일자리 근무 경험과 유관한 민간분야 취업률'은 14.4%에 불과합니다. 뉴딜 근로자 10명 중 민간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은 2명도 채 안된다는 뜻입니다.
'뉴딜일자리'가 청년층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홍보 포스터.
서울시는 내년도 좋은 일자리 창출에 올해보다 1018억 원 증가한 6029억 원을 투입합니다. 이를 통해 총 3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지난 11일 발표했습니다. 이 가운데 뉴딜 일자리 사업엔 679억원이 투입됩니다. 올해 뉴딜일자리 소요 예산(251억6000만원, 58개 사업, 1956명)보다 2.7배가 늘어납니다.

내년 뉴딜 일자리는 3배 가까이 늘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전체 뉴딜 일자리 가운데 청년대상 사업이 74% 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26%만 경단녀, 노인, 국가유공가, 결혼이주여성, 새터민(탈북 주민) 등에게 배분됩니다. 덕분에 경단녀 일자리도 조금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최저시급 언저리에 퇴직금은 없어도 당장 일할 기회가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그러나 민간 일자리 연계가 지금처럼 바닥 수준이라면 내년도 '언발에 오줌누기' 정책에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경단녀는 임신, 출산, 육아 등을 통해 저출산 문제 해소에 사회적으로 기여한 이들입니다. 양적으로만 경단녀 일자리를 늘리기보단 경단녀 뉴딜의 질적 만족도 향상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할 때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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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김민성 기자, 연구=김현진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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