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박정희 신화'까지 삼키나

서울 신당동 가옥 방문객 '뚝'…탄생 99돌 행사 참석자 작년의 4분의 1

야당·시민단체 예산 삭감 요구
내년 탄생 100주년 앞두고 각종 기념사업 차질 불가피
서울 신당동에 있는 ‘박정희 가옥’. 하루 300명 넘던 방문객이 최근 들어 급감했다. 한경DB
16일 오전 서울 신당동 주택가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 박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가족과 생활한 곳이다. 현대정치사의 전환점이 된 5·16군사정변이 이곳에서 계획됐다. 2008년 등록문화재 제412호로 지정된 뒤 서울시가 관리하던 이 가옥은 지난해 3월부터 시민에게 개방됐다. 당시 하루에 300명 넘는 관람객이 몰렸고 올초까지만 해도 매일 수십명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이곳을 찾은 관람객은 한 명도 없었다. 가옥 인근에서 노점상을 하는 A씨는 “‘최순실 사태’가 터진 이후 관람객이 크게 줄어 하루에 10명도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숭모제. 연합뉴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불똥이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박정희 신화’에 튀었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5%대로 곤두박질치자 박 전 대통령 관련 기념사업까지 잇달아 차질을 빚고 있다.

박 전 대통령 관련 기념행사 참석자 수는 예년에 비해 급감했다. 지난 14일 경북 구미시 생가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탄생 99주년 행사’엔 500여명이 참석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4000여명에 비해 8분의 1, 지난해 2000여명보다는 4분의 1로 줄었다. 유족 대표와 기관장 등이 대거 불참해 행사장엔 빈 좌석이 가득했다. 같은 날 박 전 대통령이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묵었던 경북 문경시 문경읍 하숙집 청운각에서 열린 탄신제에도 참석자가 200여명에 그쳤다. 2013년엔 1000명 넘게 몰렸다.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내년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계획한 각종 기념사업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기념사업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로 불리는 새마을운동 예산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내년 새마을운동지원 사업에 71억7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개발도상국에 새마을운동을 전파하기 위한 새마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도 35억1800만원을 책정해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이 예산 삭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심의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경상북도와 구미시도 당초 내년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에 1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가 불거지면서 각종 기념 음악회 등을 취소하는 등 관련 예산을 20억원대로 줄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저도 지역 시민단체들은 예산을 더 깎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2일 설립된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 ‘박정희 동상’ 건립 계획을 밝혔다가 여론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