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백두 - 이정록(1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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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백두 - 이정록(1964~ )

물 한그릇 모시는 데 몸의 삼할을 낮췄다
백두산 본래 높이는 삼천오백여 미터였다
화산이 터지고 팔백 미터쯤 낮아졌다
물 한그릇 모시려고 천불 뽑아냈다
하늘을 품는 일이 쉬운 일이겠는가
얼마나 많은 불길 뿜어내고
엄니는 물 한그릇 얻었나
불길 앙다물고 쭈뼛쭈뼛, 나는
헛물만 출렁이는 천치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中정화수 떠놓는 나이를 팔순이라고 하자. 삶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도 마지막까지 두손 모아 자식 잘되길 비는 나이다. 몸의 삼할은 닳고 닳았으리라. 백두산 천지-물 한 그릇을 빚기 위해 화산을 터트렸다. 그건 하늘을 모시기 위한 일! 어머니 역시 속이 천불이 나는 일을 숱하게 겪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 유비적인 상상력을 통해 시인은 헛물만 출렁이는 천지에서 제 존재를 엿본다.
이소연 < 시인(2014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