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최근의 혼란이 의미하는 것들

"최순실 사태 신속히 수습 못하고 허둥대는 한국 사회

정치권은 정략적 계산뿐 해결책 제시할 지력, 책략 부재
객관식 문제풀이식 교육 탓 아닌가

이를 인식하는 계기 됐다면 전화위복 기회 삼을 수 있어"

김영용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최근 일탈한 몇몇 사람들의 국정 농단으로 한국 사회가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혼란도 문제지만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 사회 전체가 보이는 무능함이 더 큰 문제라고 여겨진다. 최근 사태가 의미하는 것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첫째, 정부는 국가의 강제력을 집행하는 기구로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기본 책무로 하며, 대통령은 정부 수반으로서 헌법에 의해 그 직과 권위를 획득한다. 그런데 사회 질서를 지키고 유지해야 하는 대통령 자신이 질서를 파괴해 국민의 삶을 어렵게 하고 있고, 대통령이 당사자인 만큼 사태를 수습하는 데 드는 비용 또한 막대하다는 데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일은 넓은 영역에 걸쳐 커다란 힘을 행사하는 ‘큰 정부’ 하에서 발생한다.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정경유착도 큰 정부 하에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권력을 가지면 이를 행사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라는 점과 정부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해진다.둘째,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마지막 울타리는 법이지만 사회가 별다른 마찰 없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류가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형성된 도덕, 관습, 전통 등이 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다. 법치란 바로 그런 도덕, 전통, 관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법을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한 나라의 대통령 역시 헌법에 의해 그 직과 권위를 부여받지만, 그런 권위를 뒷받침하는 근간은 바로 도덕적 권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향후 헌법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이 비록 그 직을 유지하더라도 도덕적 권위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만큼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가장 중요하게 지적할 수 있는 사항이 바로 한국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이다. 이번 사태에 당면해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떤 문제든지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정치권은 문제의 진앙이 정치 영역인 만큼 높은 식견을 바탕으로 지금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지력과 책략을 가져야 한다. 즉 정치인들은 국가의 백년대계에 대한 식견과 도덕성을 겸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런 정치인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국사를 다루는 정치인이 되려면 “작은 정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 질서는 어떻게 형성되며 유지되는가?”,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식견과 지켜야 할 덕목은 무엇이며 어떻게 연마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관심과 명확한 견해를 가져야 한다. 정치인들이 국가 대계와 관련된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관심과 견해도 없으면서 정권을 잡기 위해 그저 정략적 계산만 하는 정치판은 날림 공사판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의 정치판이 딱 그렇다.사실이 그렇다면 이제 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아마도 우리의 학습 방식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사고방식을 형성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하기보다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문제 풀이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학습 방식이다.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 본 사람은 드물다. 화려한 학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그에 걸맞은 식견을 갖춘 사람이 드문 것이나, 우수한 두뇌를 타고난 한국 사람들이 노벨 상을 아직껏 받지 못한 것도 다 그런 학습 방식 탓이다.

이미 발생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식견과 덕목이 무엇인지, 이를 위한 학습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영국의 대처 전 총리가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을 읽고 후일 이를 국정의 바탕으로 삼아 영국병을 고친 것처럼.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