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싱 텐]대기만성(大器晩成), 10년 만에 F1 월드 챔피언 오른 니코

[최진석 기자] 니코 로즈버그가 탄 머신이 결승점을 통과하며 체커키를 받았다. 팀 동료 루이스 해밀턴에 이은 2위였다. 로즈버그가 운전석 밖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서킷을 메운 만원 관중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서킷을 한 바퀴 돈 로즈버그는 머신으로 도넛을 그리며 올 시즌 마감을 축하했다. 생애 첫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따낸 자신에게 보내는 축하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포뮬러원(F1) 데뷔 10년. 길고도 긴 기다림 끝에 얻은 첫 월드 챔피언이었다.
사진=F1 홈페이지
세계 최대 모터스포츠 대회 포뮬러원(F1) 최종전이 열린 지난 27일(현지시간) 두바이 오토드롬 서킷. 로즈버그는 이날 1위를 한 메르세데스AMG페트로나스 팀 동료 루이스 해밀턴에 0.439초 뒤졌다. 이날 두바이GP 우승컵은 해밀턴이 들어 올렸지만 주인공은 로즈버그였다. 그는 올 시즌 드라이버 점수 1위(385점)로 해밀턴(380점)을 5점 차로 제치고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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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니코가 아니었다. 이날 결선은 시즌 최종전답게 경쟁이 치열했다. 예선 1위를 한 해밀턴이 결선에서도 맨 앞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2~4위 다툼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로즈버그는 2위로 출발한 뒤 거센 추격전을 맞았다. 첫 번째 상대는 인피니티레드불레이싱팀의 막스 베르스타펜이었다. 두 머신은 서로를 수차례 추월해가며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했다. 로즈버그는 포디움 수성이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필사적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해밀턴이 1위를 한 상황에서 자신이 4위 이하로 떨어지면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해밀턴에게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머신은 베르스타펜을 떨쳐내기 위해 격렬한 몸부림을 쳤다.
사진=F1 홈페이지
지난해까지 로즈버그는 중요한 순간에 압박감을 극복하기 못하고 추월을 허용하는 장면을 여럿 보여줬다. 이 때문에 그에겐 ‘자동문’, ‘만년 2인자’, ‘유리 멘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번 결선에서 로즈버그는 이 꼬리표를 확실히 잘라냈다. 그는 베르스타펜을 뿌리친 뒤 이어 달려든 같은 팀의 다니엘 리카르도의 공격도 방어했다. 마지막으로 3위에 오른 차지한 스쿠데리아페라리말보로팀의 세바스찬 베텔의 추월시도마저 뿌리치면서 2위 자리를 지켜냈다. 로즈버그와 베텔의 간격은 0.403초에 불과했다.
사진=F1 홈페이지
한 순간의 실수, 실수가 아닌 틈만 보여도 베텔과 리카드로, 베르스타펜이 우르르 그를 앞지를 태세였다. 이런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단지 머신의 경쟁력이 이들보다 더 좋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단해진 멘탈로 철벽같은 수비와 날카로운 공격을 해낸 로즈버그의 두 손 끝에서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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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버그에 밀려 올 시즌 준우승에 머문 디펜딩 챔피언 해밀턴은 “공정한 경기였다”며 승부를 인정했다. 그는 로즈버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고 두 선수는 “내년에 다시 한 번 승부를 겨루고 싶다”고 말했다. 두 선수는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로즈버그는 F1 역사도 새로 썼다. 그와 그의 아버지 케케 로즈버그는 데이먼 힐(아버지 그라함 힐)에 이어 두 번째로 대를 이어 월드 챔피언을 차지한 부자(父子)가 됐다. 케케 로즈버그는 1982년 F1 월드 챔피언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