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작은 정부여야 한다

"기업 명운까지 좌우할 정도로
정치권력 클수록 권력형 비리 근절되지 않아

규제가 크면 혜택은 집중되고 비리도 비례해 커지는 구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정부를 향한 시스템 개혁"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보았다. 항공사고 사상 가장 낮은 고도에서 엔진 2개가 작동을 멈춘 긴박한 상황에서 인근의 허드슨강에 불시착하는 결단으로 탑승객 155명 모두의 목숨을 살린 US에어웨이 1549편 항공기 기장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그러나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다.

기장의 적절한 판단과 대처도 놀라웠지만 그에 못지않게 눈에 띈 것은 비상 착수(着水) 후의 구조작업이었다. 착수 후 4분도 채 되지 않아 첫 구조선이 도착했다. 이어 뉴욕시 구조대원 1200여명, 해안경비대, 잠수부 등이 힘을 합해 일사불란하게 탑승객 구조에 나섰다. 그 결과 비상 착수한 지 24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탑승객 155명을 모두 구조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기장 설리의 말대로 이런 사고에 대한 훈련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구조가 가능했던 것은 평소 마련된 구조 시스템 덕분이었다.이 영화를 거론하는 것은 지금의 국정 마비 사태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런 사태를 야기한 일련의 일들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할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를 통해 국회가 결정하는 대로 물러나겠다고 한 이상 어떻게든 그리고 언제가 됐든 박 대통령은 퇴진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언제 어떻게 물러나는지는 이후 정치판의 주도권을 생각하는 정치권이나 대권 포부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초미의 관심사이겠지만 국민 입장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할까이다.

작금의 사태에 비춰 우리에게 필요한 미래 시스템의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작은 정부다. 단순히 물리적인 규모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민간기업의 흥망조차 좌우하는 일이 없어야 지난 몇 달 동안 많은 국민을 실망과 분노에 빠지게 한 것 같은 일들이 원천적으로 방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현 사태를 가져온 한 축인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보자. 이와 관련해 대통령은 좋은 뜻에서 시작한 게 결과적으로 잘못됐다고 강변하지만 목적이 좋다고 부정한 방법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재단에 출연한 재벌 기업 가운데는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하는 기업도 있는 것으로 봐 자발적으로 출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들이 돈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청와대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많은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거나 검찰이 의심하듯이 반대급부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보복을 두려워했건 반대급부를 기대했건 문제는 기업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정부가 힘이 세다는 것이다. 이런 부당거래를 예방하려면 정부가 기업의 목줄까지 죌 수 있는 시스템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권력형 비리의 개연성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정부가 통제하는 자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어느 한쪽에서 걷어들인 돈을 다른 쪽으로 이전하는 재정적 차별력이 크면 클수록 증가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이 경우 경제행위자들은 생산을 통해 경제의 파이를 키우기보다는 이미 생산된 파이에서 자신의 몫을 늘리는 직접적으로는 비생산적인 지대추구에 나선다. 이 와중에 지대(부당이득)와 뇌물의 교환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의 각종 규제도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다. 특히 규제로 인한 혜택은 집중되는데 비용은 다수에게 확산될 경우 특수이익이 정부의 규제기구를 포획하는 일이 흔히 일어나게 된다. 포획은 많은 경우 규제 관료에게 떨어지는 떡고물과 교환된다. 당장의 뇌물일 수도 있고, 퇴임 후의 취업일 수도 있다. 이처럼 권력에 기댄 비리는 그 권력이 통제하거나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차별력 그리고 규제에 비례한다. 따라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시스템 개혁이 다음 정부의 우선 과제가 돼야 할 것이다.

다시 영화 ‘설리’로 돌아가면 이 영화에는 오바마 대통령은 고사하고 뉴욕시장도 뉴욕 경찰청장도 등장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누가 어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