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폐허 속에서도 장미는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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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smlee@assembly.go.kr >우리들 삶의 조건을 더 나아지도록 해주겠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대통령이란 그 엄청난 권력을 맡겨 놓았더니 그 결과가 너무 참담하다. 결과적으로 참모들은 물론 직업 공무원들까지 직업적 양심을 저버리게 했고, 공적 기구의 공공적 역할과 책무를 훼손하고 유린하면서 공범을 양산했다.
우리의 국가공동체 공적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져 기댈 것이 없나 싶었는데 폐허 속에서도 장미는 피어오르나 보다. 촛불을 든 민심의 함성이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서울 한복판에서 기록을 경신하더니 엊그제는 참여인원이 200만을 훌쩍 넘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국 곳곳에서, 매일 매일 크고 작은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몇 번 하다가 제풀에 꺾일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는 겁먹은 표정들이다. 촛불의 민심은 더 거세지고 더 번져나갈 것이다.더구나 그 민심은 다양한 형태로 멋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어떤 이는 촛불을 횃불로 바꿔들고, 어떤 이는 소등을 타고, 어떤 이는 트랙터를 저 땅끝에서부터 굼벵이 속도로 몰면서 며칠에 걸쳐 올라오기도 한다. 그 창의성에 감탄할 따름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보내는 항의도 훨씬 세졌다. 종전처럼 댓글에 머물지 않고 문자메시지나 전화 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퍼붓기를 한다. 해당 정치인이나 정당에는 엄청난 압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실시간으로 300명의 국회의원에게 탄핵 찬반에 대한 의사를 공개표명토록 하고, 지역민들도 해당 지역구 의원에게 탄핵에 찬성하도록 압박하는 운동을 펼치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그동안 국내외 많은 석학은 “몇몇 소수의 탐욕스런 엘리트들에게 어떻게 공동체의 운명을 맡길 수 있는가”라며 대의민주주의의 결함을 지적하고 극복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이번 행동으로 보여준 해법은 단연코 으뜸이라고 본다. 우리 국민은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며 행동가로서 주체적으로 나서고, 이웃과 연대해 품격있고 지혜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망가진 사회를 복원하는 것을 넘어 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촛불 혁명은 한국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인류문명에도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촛불 민심에 응답해야 할 때다. 정치인으로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다.
이상민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smlee@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