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 스케치] 신파극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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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 감독 원전 재난블록버스터 '판도라'영화 '판도라'(박정우 감독)는 재난 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보여준다.
오는 7일 개봉
갑작스러운 자연 재해와 콘트롤타워의 부재, 시민 영웅의 탄생, 눈물샘을 자극하는 가족애까지. 어느 것 하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판도라'와 같은 재난 영화가 계속해서 개봉하고, 수백억대 제작비를 회수할 만큼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현실에 가까운 공포는 판타지 드라마에서나 존재하는 영웅를 갈망하게 하고, 이런 영웅이 일련의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은 관객에게 대리 만족을 준다.
'판도라'는 월촌리에 있는 한별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는 하청업체 기술자 재혁(김남길)로부터 시작한다.재혁은 방사능 피폭으로 아버지와 형을 잃고 음식점을 운영하는 어머니 석 여사(김영애)와 형수(문정희), 조카와 함께 산다.
예전부터 어른들은 '밥솥'처럼 생긴 이 거대한 원전으로 우리 마을이 부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혁은 가족을 잃게 한 원전에 출근하는 하루 하루가 싫다.
결혼해 자리 잡고 싶어 하는 연주(김주현)와는 달리 재혁은 틈만 나면 마을을 떠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규모 6의 지진으로 한별 1호기가 맥없이 폭발했다.
재혁은 하루빨리 이 원전으로부터 도망치자고 하는데, 마을 주민인 '아저씨들'을 구해야 한다며 뛰어든 길섭(김대명)의 뒤를 어쩔수 없이 쫓는다.
전 발전소 소장 평섭(정진영)은 한별 원전의 위험성을 상부에 보고했다가 퇴출 위기에 처했다. 그는 사고 발생 후 가장 먼저 달려와 현장을 진두지휘한다. 평섭은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무능력한 대통령(김명민)과 국민 눈과 귀를 가리기 바쁜 국무총리(이경영),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정치인들의 이기적인 태도에 부딪힌다.
월촌리 주민들과 재혁은 원전의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신파적 전개의 이 영화를 감내하며 볼 수 있는 까닭은 배우들의 공이다. 김남길은 앞선 작품 '선덕여왕'이나 '나쁜남자'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인상적 연기를 펼친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다.
김영애와 문정희는 작은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극의 개연성을 불어넣는데에 일조한다. 특별 출연한 김명민은 '무능력한' 대통령 모습으로 현 시국을 꼬집는다.
재혁의 여자친구 연주를 연기한 신예 김주현은 월촌리 주민들을 대피시키기는 장면을 위해 대형버스 면허를 따기도 했다.
'판도라'가 뻔한 재난 영화가 아닌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소재에 있다. 박정우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탈원전' 을 주장하며 원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감독은 재난 영화의 핵심으로 '사실감'에 주목하면서 필리핀 '바탄 원자력 발전소'를 방문하는 등 자료 조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 대한민국 최초로 원자력 발전소의 내부가 현실과 가장 흡사한 형태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제작진 의도대로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희미하게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판도라'는 오는 7일 개봉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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