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벤처 데스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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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개발을 끝내고 사업화를 추진하는 단계에서는 훨씬 많은 돈이 든다. 특허를 등록해야 하고 금형을 만들어 양산체제도 구축해야 한다. 대부분 벤처들이 여기서 도중 하차한다. 창업 3~7년 정도 기업들이 맞는 이 기간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고 부른다.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 모하비 사막의 북쪽에 있는 깊고 건조한 이 분지는 섭씨 56.7도까지 오르는 척박한 땅이다. 이 계곡을 넘지 못하고 97% 정도의 벤처가 문을 닫는다.운좋게 ‘죽음의 계곡’을 넘어 사업화에 성공해도 또 기다리는 게 있다. ‘다윈의 바다’다. 호주 북부에 있는 해안가 지명을 따온 명칭인데, 이때부터 ‘적자생존’의 대경쟁을 이겨내야 신산업 창출에 성공하게 된다. 여기에도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홍보도 하고 광고 마케팅도 하고 영업조직도 갖춰야 한다. 이 바다에서 벤처들이 대부분 사망한다.
벤처 창업자 본인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계약만 해주면 ‘대박’이 날 텐데, 공장 돌릴 자금이 없고, 광고할 돈이 없어 성공 문턱에서 주저앉게 되니 말이다. 창업자가 발명가인 경우를 보면 그럴듯한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본 설비를 갖추는 데 20억원 가까운 돈을 날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투자받은 돈도 있지만 대개 집 팔고 일가친척까지 보증 세워 사업을 한 경우가 많아 자신은 한 푼 만져보지도 못한 채 거금을 날리게 된다. 그야말로 패가망신이다.
중소기업청이 엊그제 ‘데스밸리’ 단계에 있는 기업들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이 분야 예산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엔젤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한 우리 창업풍토에서는 그나마 이런 제도라도 필요하다. 그러나 벤처가 정부 지원금을 따먹으려고 시작한 게 아니고 보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가볍게 창업하는 일이다. 다행히 3D프린터 등을 활용해 시제품을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을 비롯해 창업환경은 아주 좋아졌다. 잊지 말 것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디어에 매몰되면 ‘죽음의 계곡’을 건너기 어렵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