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안드레 칼란초폴루스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 평생 흡연 즐긴 그리스인 공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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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 사라지는 담배산업에 전자담배 들고온 '프로메테우스'담배는 이른바 ‘죄악산업’의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담배에 대한 비판은 국경을 초월한다. 기호식품이라는 애연가들의 주장은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는 비판 앞에 힘을 잃는다.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는 담배의 생산과 판매의 최정점에는 안드레 칼란초폴루스(58)가 있다. 그는 세계 최대 담배회사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의 최고경영자(CEO)다.
담배산업 30년 외길
말보로 등 25개 브랜드
연 31.2조원 매출
세계 최대 담배회사 수장
'연기없는 담배' 역발상
8년간 30억달러 들여
전자담배 '아이코스' 개발
각국 규제에 생존 안간힘
경쟁사들도 매서운 추격
'덜 해로운 담배론' 비판 거세
PMI는 180여개국에서 25개 이상의 담배 브랜드로 해마다 8700억개비의 담배를 팔고 있다. 시가총액이 1366억달러(약 160조원)로 지난해 매출은 266억5000만달러(약 31조2000억원)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담배 15종 가운데 6종이 PMI 소유다. 가장 유명한 제품은 부동의 ‘글로벌 넘버원’ 말보로다.칼란초폴루스 CEO는 1985년 PMI에 입사해 30년 이상 근무하면서 담배산업과 함께 한평생을 살아왔다. 스물다섯 살부터 하루 한 갑의 담배를 피워왔고, 세계 16억명의 흡연자 그룹에서 단 한 번도 이탈해 본 적이 없다.
최근 그는 위험하기는 하지만 덜 위험한 담배가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놔서 주목을 받았다. PMI를 복마전(伏魔殿,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으로 생각하며 하루빨리 담배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장난 같은 주장이었다.
“담배산업에 엄청난 지식 보유”칼란초폴루스 CEO는 지중해와 맞닿은 그리스의 피로고스에서 태어났다. 스위스 로잔에 있는 취리히연방공대를 졸업하고 로봇과 전자장비 분야에서 일하다 프랑스로 옮겨와 유럽 최고의 경영대학원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인시아드(INSEAD)를 졸업했다. PMI에 들어갔을 때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처음에는 기업개발부 애널리스트를 맡았고 2년 뒤에는 지역운영부서에서 일했다. 폴란드, 핀란드, 헝가리 등 중앙유럽 각국에서 담배를 팔았고 담배회사의 인수합병에 관여하며 경력을 쌓았다. 2008년에는 PMI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승진했다.
CEO에 등극한 것은 2013년 3월28일이다. CEO를 넘겨준 루이스 카밀레리 PMI 회장은 칼란초폴루스의 일처리를 극찬했다. 카밀레리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지적이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역량을 갖췄다”며 “담배산업에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는 데다 야심도 있다”고 치켜세웠다.
칼란초폴루스가 PMI의 지휘봉을 쥘 수 있었던 이유는 담배 필터로는 유해물질을 걸러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폈기 때문이다. 담배의 유해물질 가운데 상당 부분은 연기에서 비롯된다. 담배가 불에 타면서 다량의 발암물질이 생성된다는 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다. 칼란초폴루스는 PMI의 생존을 위해서는 연기를 내지 않으면서도 담배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제품 생산이 필수적이라고 봤다.담배산업계의 프로메테우스
해법은 전자담배였다. PMI가 내놓은 전자담배는 한국에서 대중화된 것과 다르다. 액상 니코틴을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다. 담배 자체의 모습은 지금 것과 비슷하다. 다만 조금 짧을 뿐이다. 공대 출신인 칼란초폴루스 CEO의 주도로 8년간 30억달러를 들여 개발한 전자담배는 담배를 태우지 않고 가열만 한다. 파이프 모양의 ‘담배가열기’에 담배를 꽂아 니코틴과 향이 뿜어져 나올 정도로만 열을 가하기 때문에 연기가 적고 발암물질도 줄어든다는 게 PMI의 주장이다. PMI에 따르면 불쾌감을 주는 담배 냄새도 크게 줄어든다.
상품의 이름은 아이코스(iQOS). 일본 이탈리아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 시판 중이다. 아이코스는 이미 일본 담배 시장에서 5%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담배가열기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는 모습까지 연출될 정도로 인기다.미국 경영전문매체 포브스는 칼란초폴루스가 그리스 출신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주신(主神) 제우스가 인간으로부터 불을 빼앗아가자 몰래 훔쳐서 다시 전해줬다. 칼란초폴루스 CEO가 담배의 종말을 고하는 시기에 새로운 형태의 담배를 만들어 인간들의 손에 다시 담배를 쥐여주려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지난달 30일 아이코스의 영국 출시를 발표하며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담배 대체품(아이코스 등 전자담배)이 충분히 시장에 퍼져 기존 시장에서 철수할 순간이 올 것”이라며 “머지않아 그때가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흡연자들이 PMI의 전자담배를 찾도록 하기 위해 뭐든 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지난해 그는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거나 제조공정을 혁신하는 것보다 새로운 차원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순탄치 않은 칼란초폴루스의 앞길
칼란초폴루스 CEO의 계획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단 적의 반격이 거세다. PMI에 이어 세계 2위의 담배업체인 영국계 브리시티아메리카타바코(BAT)는 지난 10월 미국 2위의 담배회사 레이놀즈아메리칸을 470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PMI보다 덩치가 훨씬 커진다. BAT가 레이놀즈를 사겠다고 나선 것은 전자담배 시장 확보를 위해서다. 레이놀즈는 비록 실패를 맛보기는 했지만 1980년대 프리미어라는 이름으로 가열방식의 전자담배를 내놓으며 관련 기술을 쌓아왔다. 새로운 시장을 접수하려다 경쟁사들의 전의만 불태우는 부작용을 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BAT뿐만 아니라 3위 재팬타바코와 4위 임페리얼도 전자담배 사업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매출과 순이익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도 신경쓰이는 대목이다. PMI의 매출은 칼란초폴루스가 CEO에 취임한 해인 2013년 309억달러였지만 2014년에는 296억5000만달러로 300억달러를 밑돌았다. 각국의 금연정책이 강화되면서 매출이 다시 증가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순이익도 2013년 85억3000만달러에서 지난해는 68억5000만달러로 줄었다. 전자담배 시장이 급성장세를 탄다고 해도 기존 담배사업의 매출 하락을 극복할 정도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덜 해로운 담배’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칼란초폴루스 CEO가 BBC 라디오와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반론이 제기됐다. 금연운동단체인 ‘흡연과 건강에 대한 행동’의 데버러 아노트 최고책임자는 “전자담배가 덜 해롭다는 회사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담배 광고부터 당장 중단하라”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