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만 요란했던 한미약품 내부자거래 수사

검찰 "내부자와 공매도 세력간 결탁, 의도적 늑장공시 없었다"

33억 부당이득 45명 적발
2차정보 수령자 과징금 부과

"거래소와 협의하다 공시 지연
법적으로 기한 어긴 것 아니다"
베링거인겔하임이 한미약품과 맺은 85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해지했다는 악재 정보는 공시 전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다.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한 직원들은 회사 주식을 갖고 있는 옆 부서 동료나 가족들에게 은밀하게 알렸다. 정보는 전화나 메신저로 삽시간에 퍼졌다. 1차 정보 수령자는 또 다른 지인에게 귀띔하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부 기관투자가는 주가가 떨어지면 이익을 보는 공매도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내부자와 결탁한 공매도 세력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한미약품의 늑장공시 의혹도 거래소 절차에 의한 것일 뿐 고의성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서울 남부지방검찰청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서봉규 부장검사)은 이 같은 한미약품 내부자 거래 사건의 수사 결과를 13일 발표했다. 총 33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45명을 적발했다. 한미사이언스 인사팀 황모 상무(48) 등 4명을 구속 기소하고 2명은 불구속 기소, 11명은 약식 기소했다. 2차 이상 정보 수령자 25명은 과징금 부과 대상으로 금융위원회에 통보했다.적발 인원 45명 중 한미그룹 임직원이 22명에 달했다. 법무팀 등 관련 직원들은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계약 파기 분위기를 지난 9월28일부터 전화나 메신저 등을 이용해 주변에 전파했다. 남부지검은 악재 공시 전에 회사 주식을 매도한 직원이나 지인만 130여명에 달했고, 45명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공매도에 나선 펀드매니저도 적발됐다. 지난 9월30일 악재 공시 이전인 개장 직후 29분 사이에 공매도 거래량은 평상시의 네 배에 달했다. 남부지검은 공시 전 공매도한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 다섯 곳을 압수수색한 결과 한 곳의 펀드매니저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해당 펀드매니저는 2차 이상의 정보 수령자여서 과징금 부과 대상”이라며 “조직적인 공매도 세력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악재 정보는 공시 전 광범위하게 퍼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 5차 정보 수령자는 ‘네이버 주식 밴드’에 계약이 파기될 것이란 내용의 글을 게시했고, 이 게시물은 속칭 ‘찌라시’(사설정보지)를 통해 시장에 유통됐다.한미약품이 고의로 늑장공시한 혐의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미약품은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계약 해지는 9월28일 오후 7시6분에 발생했지만 이 사실은 이튿날 시장이 열린 뒤인 오전 9시29분에야 공시됐다. 검찰 관계자는 “한미약품 회장 등 경영진이 개장 전 공시를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고, 오너 일가 계좌 등에도 특이 사항은 없어 의도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거래소와 논의하다 늦어졌지만 법적으로 기한을 어긴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미약품은 이날 ‘주주 여러분과 국민께 드리는 사과문’을 통해 “내부 통제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강화해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 공매도보유 주식이 없는 상태에서 주가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 판 뒤 나중에 되사서 갚는 매매 행위를 말한다. 국내에선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만 공매도를 할 수 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