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포퓰리즘에 묻힌 지식의 절박함, 펜끝에 담다

시대의 질문에 답하다

한국경제신문 / 논설위원실 지음 / 한국경제신문 / 555쪽│2만원

한경 논설실, 87개 주제 선정
트럼프 열풍·무차별 복지 등 논쟁적 이슈 심층적으로 분석
AP연합뉴스
‘Vitamin(비타민)’은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실에서 발간하는 주간지다. 굳이 분류하자면 시사 교양의 ‘지식주간지’에 해당하는, 16쪽의 작은 책자다. 주간 비타민은 매주 커버스토리 형식으로 3~5쪽 분량의 집중분석 기획거리를 싣고 있다. 전체 16쪽의 얇은 분량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비중이다. 그만큼 한경 논설실에서 역점을 두는 주간 최대 이슈, 혹은 집중해볼 만한 아젠다로 선정해 왔다. 2014년 7월 시작된 이 지식주간지는 최근 지령 132호(12월15일자)까지 냈다.

《시대의 질문에 답하다》는 비타민이 한 주의 메인 메뉴로 선사한 커버스토리를 엮은 책이다. 분량을 감안하다 보니 130여개 커버스토리 중 87개 주제만 추려졌다. 물론 시의성을 많이 감안했다. 발행 당시의 분석·탐구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 버린 아젠다는 배제했다. 그렇게 100개의 집중탐구 이슈가 추려졌으나 분량의 제한 때문에 최종적으로 87개 주제로 더 줄어들었다. 이것만으로도 꽤 두툼한 부피가 돼 버렸다.

아무래도 ‘비타민’을 발행한 동기와 배경부터 훑어보는 게 이 책의 내용과 철학, 지향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지식과 지력이 존중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반성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지식의 가치와 이성이 경시되니 과학적 사고도, 지력 기반의 진지한 성찰도 빈약하기만 한 부박한 사회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 전체가 더없이 가벼워지면서 이리저리 쏠리기나 하는 현상은 사실 최근 한두 해의 일도 아니었다.

늘 사회를 지배한 것은 포퓰리즘과 떼법, 과도한 감성, 아니면 싸구려 선동에 표출되는 격정 같은 것이었다. 진정한 자유주의가 사회를 발전시키고 자유민주 기반의 시장경제라야 국부를 쌓아 올릴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이들도 소수에 그쳤다. 경제민주화의 깃발이 휘날렸고, 무차별 복지나 강조하는 가짜 경제학이 점점 목소리를 낸 것도 최근 몇 년 새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었다.국회가 특히 그러했다. 시장의 기능을 죽이고 정부 역할만 극대화하는 무수한 법안들이 마구 만들어진 게 우연이 아니었다. 심지어 스스로 어떤 법을 만들어 냈는지 모른다는 의원도 적지 않은 정도였다. 사법부도 정상은 아니었다. 공동체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질서를 부정하는 판결들이 나왔고, 많은 판사가 법정의 작은 독재자처럼 군림했다. 법의 양심이 아니라 판사 개인의 편견을 감추지 않은 엉터리 판결이 내려져도 그만이었다. 법원의 독립이라는 미명 아래 헌법의 기본 가치조차 부정되는 제멋대로 판결이 이어졌다. 행정부까지 경제민주화 구호를 함께 외치며 좌편향된 규제 행정으로 기업 때리기에 가세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한경 논설실은 지식과 지력의 사회를 꿈꾸며 매주 열심히 비타민을 만들었다. 물론 우리 사회의 특정한 한쪽에서만 막을 수 있는 흐름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식에 가치를 두면서 지력을 다지지 않고는 조금의 저지조차 어려운 전방위적 광풍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경 논설실이 논설회의를 통해 주요 이슈와 큰 트렌드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한 주의 탐구 아젠다는 자연스럽게 부각됐다. 지식 갈증을 채워 나가되, 현안의 진짜 배경과 근본 쟁점이나 이론적 근거는 무엇이며,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조금 긴 호흡으로 분석·정리한 주제가 그렇게 선정된 커버스토리다.한국의 다수 언론들이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때 영국인들이 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외치는지, 쟁점은 무엇인지 조명한 것도 그런 예다. 도널드 트럼프를 미친 사람 정도로 여길 때 트럼프 돌풍 현상의 근원을 비교적 초기 단계부터 분석한 것도 그렇다. 수십 쪽짜리 노동개혁 합의문의 원문 분석과 송민순 회고록의 논란 대목을 내용(팩트) 그 자체만 자세히 소개한 것도 있다.

구글 애플 등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복잡한 절세 전략의 내용과 그 시사점,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의 실상, 가짜 통계가 생산되는 과정과 이를 악용하는 통계의 정치학, 중국이 드론(무인항공기)에서 앞서는 진짜 이유 등 다양한 주제들이 망라됐다. 대한민국 경제의 진실, 법과 정치, 개인과 집단에 대한 이해 모색, 글로벌 경제의 트렌드, 역사와 문명 등에 대한 87개 주제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작은 완결형이다.

‘이 책만 보면 어떤 면접도 다 통과한다.’ 단행본을 내면서 한경 논설실에서 나왔던 책 제목 후보 중 하나였다. 결코 우스개가 아니다. 이 시대의 주요 논쟁 이슈가 적당한 깊이로 천착·정리돼 있다. 한국 사회가 더 진중한 사회로 발전하는 데 이 책이 작은 기여를 해낼 것이라는 기대도 단지 희망만이 아니다. 세상의 변화 원리에 주목하고 근본 이슈들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도록 지식과 지력을 키우는 데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은 당신이 지식세계를 지배한다. 현상에 머물지 말고 흐름을 읽어라.’ 논설실의 저자들은 이렇게 역설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