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요정 김복주', 청춘의 성장통을 따듯하게 보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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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콘텐츠마음은 행동에서 비롯되는가. 행동은 마음에 좌우되는가. 같은 말인 것 같지만 엄밀히 들여다보면 주체가 다르다. 재미 철학자 김재권은 대표적인 저서 《심리철학》과 《물리주의》에서 마음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세상에서 모든 물질이 사라진다면 시공간이 사라진다”며 “의식이 실재한다면, 의식은 물질세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한다.
MBC 수목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
MBC 수목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는 국가대표를 꿈꾸는 체대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건강한 체육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큰 키에 근력까지 갖춘 역도부 에이스 김복주(이성경 분), 비공식 국내 신기록 보유자인 수영부 에이스 정준형(남주혁 분), 미모의 국가대표 출신 리듬체조 선수 송시호(경수진 분) 등 매력적인 인물들이 극을 이끌어 간다. 이들이 부침에도 굴하지 않고 국가대표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거듭날 수 있을까.첫 회부터 역도 천재 김복주의 금메달 획득 장면을 보여줬지만, 이 드라마는 성공지향적인 다른 이야기들과 결이 좀 다르다. 천재 역사(力士) 김복주는 젊은 시절 역도 선수였던 아버지의 꿈을 잇기 위해 역도에만 매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첫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비만 클리닉 원장인 정재이(이재윤 분). 체급을 유지해야 하는 역도 유망주에게 비만 클리닉은 불과 물처럼 반대되는 장소다. 하지만 상사병에 환각과 환청까지 경험한 김복주는 정재이를 보기 위해 비만 클리닉에 등록한다.
수영부 에이스 정준형은 ‘스타트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중요한 대회마다 스타트에서 실격하는 징크스가 있다. 수영선수로선 치명적이다. 비운의 천재지만 겉으로는 ‘얼짱’ ‘몸짱’에 성격도 쿨한 장난꾸러기다. 사랑이 깨진 아픔도 있다. 송시호와 한얼체대 대표 커플이었지만 국가대표로 선발돼 태릉선수촌으로 들어가면서 헤어졌다. 씩씩한 초등학교 동창 김복주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서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송시호 역시 만만치 않은 트라우마가 있다. 리듬체조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가족을 희생시켜 그 자리에 올랐다는 심리적인 고통과 부담에 시달리고, 결국 저조한 성적으로 다시 체대에 복귀했다. 체중 감량을 위한 식이조절 부담에 시달리는 그는 반대급부로 폭식 욕구를 조절하지 못해 위장장애를 훈장처럼 달고 산다.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들어 가는 이 청춘들을 보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역도부 교수 윤덕만(최무성 분)은 “귀한 집 자식 데려다가 괜히 실업자나 만드는 것 아닌가”라며 자괴감에 빠진다. 스무 살 꽃띠인 이들에게 자기 절제와 강도 높은 훈련을 강요한 만큼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도자의 고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자는 한정돼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가대표가 된 사람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건 사람.
역도부 코치 최성은(장영남 분)은 “에이 망할 놈의 등수!”라면서도 “그게 운동인들의 숙명 아니겠나. 좋아하는 것을 한 만큼 감수해야지 뭐”라며 맥주 한 캔을 입에 털어 넣는다. 어차피 본인이 선택한 길인 것이다.
부모의 꿈을 대신 살고 있든, 본인이 선택했든 간에 국가대표 근처까지 온 이들은 외롭다. 그래서 기댈 사람이 필요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며 다시 사귀자는 송시호의 애원에 정준형은 단호하게 답한다. “네 착각이야 그거. 난 네 지푸라기 아니야. 난 나야.” 정준형 역시 자신이 걱정하는 김복주에겐 또 다른 속내를 털어놓는다. “수영이 좋아 수영선수가 됐는데 전공이 되니까 생각지도 않던 부담감이 생기더라고. 소싸움 몰린 것처럼.”‘아프니까 청춘’이지만 이들의 아픔은 일반 세계의 청춘들과는 좀 다르다. 결국 본인의 선택에서 나온 부산물이어서다. 이 아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최 코치는 첫사랑을 스스로 정리한 김복주에게 “괜찮아. 다 지나간다. 운동할 때 숨이 턱까지 차 가지고 죽을 거 같잖아. 근데 그 고비만 넘어가면 괜찮아지잖아. 다 그런 거야”라며 위로한다. 의식은 물질세계에서 생겨나는 것이지만 그 의식 또한 물질세계의 순환으로 변한다. 온갖 성장통을 겪어 내는 것 또한 청춘의 권리인 것이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