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 뷰] 채서진, '김옥빈 동생' 꼬리표를 떼는 법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연아 役 채서진
"언니 영향으로 연기 시작, 김옥빈 동생 넘어설레요"
'당신, 거기에 있어줄래요' 채서진 /사진=변성현 기자
'김옥빈 동생'이라는 꼬리표는 잠시 잊어도 좋다. 영화 '당신, 거기있어줄래요'에서 채서진(22)은 늘 따라붙던 이 말들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만큼 제 몫을 충실히 해냈다.

홍지영 감독의 신작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가 발간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했다. 50대 외과 의사 수현(김윤석)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의 약을 얻게 되고, 사랑하는 여자 연아(채서진)를 보기 위해 시간을 거스른다. 1985년의 한 페이지에 도착한 그는 과거의 자신, 20대 수현(변요한)을 만난다.

영화는 완성도 높은 원작과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부녀간의 사랑 등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창피하게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울었어요. VIP시사 때 두 번째 봤을 때는 촬영 당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이렇게 말하기 민망하지만 보면 볼수록 집중하게 되는 대상이 바뀌어요. 조만간 모자 푹 눌러쓰고 한 번 더 보러 가려고요." 채서진은 이 영화에서 여성 조련사 연아로 분해 애정표현에 서툰 수현(변요한)과 긴 연애를 이어간다. 그는 30년 전에도, 후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순수한 매력을 뽐냈다.

"홍지영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연아는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을 실존 모델로 했습니다. 동물들을 일,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대하죠. 크랭크인 전 거제 시월드에서 조련사 훈련도 받았어요. 돌고래 조련사들을 취재하면서 연아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연아는 현재와 과거의 수현을 이어주는 결정적 인물이다. 채서진은 연기파 배우 김윤석과 변요한 사이에서도 주늑들지 않고 중심을 단단히 잡아냈다."사전에 철저하게 생각하고 준비를 많이 해 가는 편이예요. 그런데 연습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현장에서 굳어버리고 말더라고요. 김윤석, 변요한 선배가 현장에서 만났을 때 시너지가 대단해요. 그 모습을 관찰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렸죠."

채서진과 변요한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이다. 그는 변요한을 '단편영화계의 전설'이라고 치켜세웠다.

"입학했을 때 변요한 선배는 독립영화에서 상업영화로 넘어가 활동을 하고 계셨어요. 저도 단편영화를 꽤 많이 찍은 편인데 그분은 '넘사벽' 이시더라고요. 많은 선후배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분이셨죠." 두 사람은 극 중 7년을 만난 오랜 연인으로 호흡했다. 눈만 마주치면 불꽃이 튀는 사랑은 아니지만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그런 관계였다.

"변요한 선배와 친해지려고 일부러 노력하지는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서로 믿었던 것 같아요. 촬영 전에는 채서진과 변요한이지만 카메라가 돌아가면 수현과 연아가 됐죠. 아이러니하게 촬영 끝나고 조금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채서진은 2006년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로 데뷔한 후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2014)을 통해 스크린에도 진출했다.

올해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 영화 '초인', '커튼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까지 출연하면서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가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것은 역시 언니 김옥빈 영향이 컸다.

"가족 중 배우가 있다보니 늘 식탁이나 소파에 시나리오들이 쌓여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연기에 흥미를 느끼게 됐죠.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기과로 진로를 정했어요. 학교에 와 동기들과 함께 연기하다 보니 '아, 이게 내 길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채서진 본명은 김고운. 그가 예명을 사용하게 된 이유도 언니 때문이다.

"초등학교때부터 '김옥빈 동생'이라는 소리를 달고 다녔어요. 인터넷에 사진이 돌면서 데뷔도 안 한 제가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고요. 앞으로 배우로 한 발 더 나아가려면 언니와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얼굴보면 누구 동생인지 다 알더라고요."

그는 연기 활동을 하면서 언니 김옥빈과 단 한 번도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최근 벼랑 끝에 몰린 강도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를 보면서 저런 이야기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고. 언젠가 채서진과 김옥빈 자매가 함께 출연하는 영화를 볼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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