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 "'세상에 없던 화장품' 만드니 로레알·J&J에서 러브콜"

CEO 오피스

"R&D 칸막이 없애라…헤어+마스카라 등 융합 연구"
일러스트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헤어 제품과 마스카라를 함께 연구해 보십시오.”

2년 전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의 제안에 직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머릿결을 좋게 하는 헤어 제품과 속눈썹을 짙고 풍성하게 해주는 마스카라를 연구하는 직원들에게 같이 일해보라는 것이었다. 색조 화장품에 속하는 마스카라는 보통 눈두덩이에 색감을 주는 아이섀도처럼 눈을 화장하는 제품과 함께 개발이 이뤄지던 터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품을 함께 연구하라는 지시에 반발하는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굽히지 않았다. 곧바로 연구소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헤어 제품과 마스카라(HM랩), 크림과 파운데이션(CF랩), 에센스와 마스크팩(EM랩), 파우더와 펜슬(PP랩), 오일과 립스틱(OL랩) 등 연구소 내 실험실(lab·랩)이 꾸려졌다.“기술 혁신만이 살길”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인 코스맥스를 창업한 이 회장은 끊임없이 기술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 회장은 틈만 나면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화장품 시장에서 자체브랜드 없는 ODM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이 제 발로 찾아올 수 있도록 기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임직원에게 주문한다.

코스맥스가 시장의 판도를 바꾼 혁신적인 제품을 잇따라 내놓는 배경이다. 젤아이라이너가 대표적이다. 눈에 선을 그어 눈매를 또렷하게 해주는 아이라이너는 사용자가 그리기 편한 연필 형태와 붓펜 형태가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연필 형태는 날렵한 선을 그리기 어렵고, 붓펜 형태는 두껍게 그릴 경우 이전에 그린 선이 번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한 게 젤아이라이너다. 별도 용기에 젤크림 형태로 담긴 아이라이너를 전용 브러시로 양을 조절해 그리면 된다. 눈가에 밀착돼 더욱 또렷하게 선을 그릴 수 있다. 코스맥스가 2008년 로레알에 처음 납품한 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5000만개 이상이 팔렸다. 거의 모든 화장품 브랜드가 젤아이라이너 제품을 내놓을 정도로 아이라이너 시장을 바꿔놨다.

코스맥스의 기술력은 글로벌 화장품업계에선 정평이 나 있다. 자체 제품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만 고집하던 존슨앤드존슨이 코스맥스에 ODM을 주문할 정도다. 코스맥스는 최근 존슨앤드존슨과 2018년까지 100여종의 제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올초 아시아 시장에 선보인 ‘뉴트로지나 딥클렌징오일투폼’이 출시 8개월 만에 140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끈 게 계기였다. 이 제품은 화장을 손쉽게 지울 수 있는 신개념 클렌징폼으로 코스맥스가 개발했다. 반응이 좋자 존슨앤드존슨은 미국 유럽 등으로 판매를 확대했다.

융합 연구의 성과도 차츰 가시화되고 있다. 오일 제품과 립스틱을 함께 연구하는 OL랩에서는 피부에 보습을 높여주는 오일과 유분 제형인 립스틱, 립글로스를 융합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연구개발(R&D) 전략이 회사의 성장을 판가름하는 핵심 요인”이라며 “어떤 외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술 중심의 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中서 제2 도약 일군다

이 회장은 안에서는 기술 혁신을 강조하면서 밖으로는 해외 시장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코스맥스는 한국 미국 중국 인도네시아 등 세계 곳곳에 생산기지를 확보했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이 코스맥스에 러브콜을 보내는 배경 중 하나다.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은 지난 7월 한국 화장품 기업으로는 최초로 할랄 인증을 받았다. 이에 따라 80조원 규모 이슬람 화장품 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이는 시장은 중국이다. 코스맥스는 올해 중국 상하이 공장의 생산 규모를 연 2억개에서 4억개로, 광저우 공장은 연 4000만개에서 1억개로 각각 두 배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르면 내년께 코스맥스의 중국 매출이 한국 매출을 넘어설 것으로 이 회장은 보고 있다. 그는 “매달 한두 번 중국 상하이를 찾는데 갈 때마다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며 “기초 화장품을 주로 쓰던 중국 여성이 고가의 색조 화장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색조 화장품에 매기던 특수소비세를 폐지한 것도 호재다. 코스맥스는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초 색조 화장품 전용 공장을 현지에서 가동할 계획이다.내년 창립 25주년을 맞는 코스맥스는 내년 5월 열리는 중국 상하이 미용박람회에서 새로운 기업이미지(CI)를 발표할 계획이다. 이 회장이 중국 시장을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현재 코스맥스 CI는 빨간 사과 세 개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사과는 인간에게 선과 악을 가르쳐준 성경 속 ‘이브의 사과’다. 정직하게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사과는 ‘뉴턴의 사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연구개발하겠다는 뜻이다. 마지막 사과는 그리스 신화 속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바친 사과다. 화장품 기업으로서 아름다움을 지향한다는 의지다. 코스맥스는 이 같은 사과의 의미를 순우리말로 ‘바름, 다름, 아름’으로 표현해 모토로 삼고 있다.

“올해 매출 1조원 넘는다”

이 회장은 제약사 영업사원,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1992년 매형의 제안으로 화장품 ODM 사업을 시작했다. 후발주자로 성공하려면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년 매출의 5% 이상을 R&D에 투자하는 원칙도 이 회장이 정했다.

코스맥스는 화장품 ODM 기업으로는 세계 최초로 매출 1조원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1972년 설립된 이탈리아 화장품 ODM 기업인 인터코스를 제치고 지난해 이미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이 회장은 “단기간에 몸집을 키우기 위해 인수합병(M&A)에 집중하기보다 꾸준히 내실을 다져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화장품과 함께 건강기능식품 ODM 사업을 강화해 매년 30% 이상 성장세를 유지할 계획이다.

최근 만난 이 회장은 내년 사업 구상을 묻자 수첩부터 꺼냈다. 그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수첩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이 회장은 연초에 직원들과 함께 공유할 메시지를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가서 제압하자. 연결해서 혁신하자. 집중해서 결과를 얻자.’ 세계 1위가 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내년 한 해 동안 코스맥스를 더 발전시키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를 담았다. 이 회장은 “화장품산업은 물론 모든 산업에서 집중화 및 거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혼자 성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외 우수 협력사와 연계해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 이경수 회장 프로필△1946년 황해도 송화 출생 △1966년 경북 포항고 졸업 △1970년 서울대 약학과 졸업 △1992년 대웅제약 전무 △1992년 코스맥스 설립 △2007년 대한화장품협회 이사 △2010년 무역의 날 대통령표창 수상 △2012년 로레알그룹 100대 협력사 선정 △2013년 로레알그룹 인도네시아·미국 공장 인수 △2015년 신성장 경영대상 대통령 표창 △2016년 무역의 날 1억불 수출의 탑 수상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