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독자 브라우저 '크롬' 개발…대성공

안드로이드 부서 맡아 갈등 조율 '조용한 스타일'의 리더십 발휘

수학적 능력 타고난 인도 청년
12살때 다이얼 전화기 들여놓자
한 번 건 전화번호 기억하는 천재
와튼스쿨 MBA…맥킨지 근무

2004년 검색 툴바 운영팀에 입사
"자체 브라우저 만들자"
슈밋 CEO 설득시켜 개발 성공
인터넷익스플로러 제치고 올 4월기준 시장점유율 41% 1위

창업자 페이지의 오른팔로 불려
안드로이드 팀 맡아
부서 갈등 잠재우고 소통 이끌어
회사 "구글식 개방

“컴퓨터가 ‘인간의 비서’ 시대 올 것, VR·IoT 등 연계 AI시대 열겠다”
지난해 8월 구글은 지주회사 알파벳을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구글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페이지가 알파벳 CEO로, 에릭 슈밋 구글 회장도 알파벳의 이사회 의장으로 이동했다. 구글의 핵심 간부들이 알파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앞으로 누가 구글을 책임질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구글의 새로운 CEO에 임명된 건 순다르 피차이 제품 부문 수석부사장(44·사진)이었다. 구글 입사 11년 만에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오른 파격적 인사였다. 젊은 조직인 구글에서도 상당히 빠른 승진이었다. 그는 대중에게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구글 내부에서는 구글을 맡길 만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기술 기업의 수장으로 올라선 비결은 무엇일까.

기술에 매료된 가난한 인도 청년피차이는 1972년 인도 남부 타밀 나두주의 주도인 첸나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속기사였다. 아버지는 영국계 전기회사의 엔지니어로 근무했고, 이후 전자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피차이는 내 일에 호기심을 보였다”며 “기술에 매료됐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피차이가 열두 살이 된 해 집에 다이얼 전화기를 들였다. 피차이는 한 번 전화를 건 번호는 모두 기억했다. 피차이의 뛰어난 수학적 능력이 드러난 것도 이 무렵이다.

자연스럽게 엔지니어의 길을 택했다. 공부를 곧잘 했던 피차이는 인도 남부 카라그푸르의 인도기술대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졸업 후 스탠퍼드 유학길에 올랐다.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지 않았다. 남동생을 포함한 네 식구는 방 2개짜리 아파트에서 살았다. 집에는 TV도 없었고 자동차가 없어 네 식구가 스쿠터 한 대에 모두 타야 했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 피차이의 비행기 티켓 가격은 당시 아버지의 한 해 연봉이 넘는 1000달러였다.그는 미 스탠퍼드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재료과학과 반도체 물리학을 전공했다.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어려운 형편에 2002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마친 뒤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크롬 제안해 성공 이끌어

피차이의 구글 입사 스토리는 거짓말처럼 시작됐다. 입사일은 2004년 4월1일, 만우절이었다. 피차이는 입사 직후 구글의 검색 툴바를 운영하는 작은 팀에 합류했다. 당시 지배적인 검색 브라우저였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터넷익스플로러와 파이어폭스에서 구글의 검색 점유율을 높이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피차이는 MS가 향후 구글 툴바를 설치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해 CEO였던 슈밋에게 자체 브라우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당시 슈밋은 브라우저 전쟁에 뛰어드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든다며 반대했다. 피차이는 구글의 비즈니스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며 상사들을 설득했다. 파이어폭스의 개발자 몇 명을 고용해 크롬 시제품을 제작했다. 슈밋은 이를 본 뒤 개발을 바로 수락했다. 그는 “막상 보니 좋았고, 완전히 내 마음을 바꿨다”고 인정했다.

2008년 9월 구글은 크롬 브라우저를 내놓았다. 대성공이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넷마켓셰어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크롬은 시장 점유율 41.6%를 기록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후 크롬을 브라우저 기반의 운영체제(OS)로 발전시켰고, 2011년에는 크롬을 탑재한 노트북인 ‘크롬북’을 내놨다.

피차이는 이후 지메일 등 구글 앱스를 담당했다. 2013년에는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까지 맡았다. 피차이는 페이지의 오른팔로 불릴 정도로 신임을 받게 됐다. 페이지는 피차이에 대해 “깊은 기술적 전문성, 제품을 보는 훌륭한 눈, 기업가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빛 발한 조용한 리더십

‘조용한 스타일이 성과를 거뒀다.’(월스트리트저널), ‘조용하고 학구적인 피차이가 CEO로 낙점된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데일리메일)

지난해 8월 피차이가 구글의 새 CEO로 내정되자 외신들은 그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조용한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는 분석이었다. 피차이는 조용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피차이의 이웃은 “그는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고집이 셌다”고 회고했다.

크롬의 성공은 그의 고집스러운 면모를, 안드로이드 부문에서의 경험은 그의 부드러운 스타일을 보여준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팀은 피차이가 맡기 전까지 안드로이드를 창업한 앤디 루빈이 이끌어왔다. 그는 협력해온 하드웨어 제조사들에 ‘마키아벨리 같은 스타일’로 묘사될 정도로 독단적이었다. 애플과 일하는 게 낫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구글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다. 각 부서는 안드로이드폰에 자체 서비스를 얹고 싶어했지만 루빈은 이를 원치 않았다.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2013년 피차이가 안드로이드를 맡게 됐다. 페이지는 직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았던 그가 부서 간 갈등을 조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피차이는 안드로이드와 다른 부서 간 협력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각각 다른 건물에 있는 음성 비서 서비스 부문인 구글나우와 안드로이드 팀 간 인력 교류도 단행했다. 구글나우 관계자는 “루빈 체제에선 일어날 수 없는 ‘구글식 글라스노스트(개방)’였다”고 말했다.

미니 잉거솔 전 구글 상품매니저는 “피차이는 말을 아끼고 나서지 않지만 업무에 대한 열정은 컸다”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고 했다. 피차이는 올해 미국 구인·구직 사이트인 글래스도어가 발표한 ‘직원들이 뽑은 CEO’에서 7위를 차지했다.

AI 시대 여는 구글

크롬과 안드로이드의 성공을 이끈 피차이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지난 4월 주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앞으로 각종 기기는 사라지고 컴퓨터가 인간의 비서가 될 것”이라면서 “모바일 퍼스트에서 인공지능(AI) 퍼스트로 옮겨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구글의 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대결을 펼치면서 존재감을 넓혔다. 최근 중국에서 새 대국 상태를 찾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구글은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 다양한 신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통합하는 건 AI 기술이다. 피차이는 이들 기술이 AI와 접목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 9월 AI를 활용한 메신저 ‘알로(Allo)’를 내놨다. 이에 앞서 5월에는 집주인 음성을 알아듣고 지시를 수행하는 가정용 스피커 ‘구글 홈’ 서비스를 내놨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