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한 이주열 총재] '동주공제(同舟共濟)'로 위기 넘자던 한은·기재부…재정 역할 또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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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
이주열 한은 총재 '선공'
요란한 통화정책 시대 가고 재정의 시대 왔는데
내년 예산 완화적이지 않다
기획재정부 '반격'
경기급랭 적극 대응하겠지만 재정 지나치게 동원하면
日처럼 순식간에 건전성 악화

지난 16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나 정책 협력을 외친 뒤 닷새 만에 정부 정책에 아쉬움을 드러낸 것이다. 그날 두 사람은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함께 물을 건넌다)’라는 고사성어까지 언급했다. 하지만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하는 정부로선 무작정 돈을 풀기도 쉽지 않다. 내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정과 통화당국의 역할 논란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정부 지출 0.5% 증가에 그쳐”

내년 예산안에서 정부의 총지출은 400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경기를 지원하기 위해 최대한 확장적으로 짰다지만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올해 총지출과 비교하면 0.5% 늘어나는 데 그친다는 지적이다. 이 총재는 “총지출 증가율이 정부가 예상한 총수입 증가율보다 낮다”고 말했다.
◆‘재정이냐 통화냐’ 역할 논란과거 경기 우려가 클 때는 정부가 한은에 금리인하를 요청하곤 했다. 하지만 거꾸로 통화당국이 재정당국에 ‘더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총재는 “해외 신용평가사와 국제금융기관들도 한국의 장점으로 재정정책 여력을 꼽는다”고 재정역할론을 거듭 강조했다.
한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자료에서 “경기 하방 리스크(위험)가 더 커졌다”며 내년 경제성장률을 기존 2.8%에서 하향 조정할 것을 시사했다. 금리인하로 대응하면 좋겠지만 미 금리인상으로 정책의 물줄기가 바뀌고 있다는 게 고민이다. 이 총재는 미 금리인상과 자금유출 우려, 가계부채 급증 등을 지적하며 “지금 한은은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의 리스크 관리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이 경기 대응의 역할을 정부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이에 대해 22일 이 총재는 국회 기재위 업무보고에서 “핑퐁게임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과 정부가 인식을 공유하며 협조하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유 부총리도 “(11조원의 추경을 편성한) 올해도 그랬지만 내년에도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필요하면 재정 확대에 나서겠다는 의미다.◆정부, 최선 방안 찾겠다지만
하지만 정부의 속내는 다르다. 기재부 예산실 고위 관계자는 “국가채무가 2010년 392조원에서 2016년 640조원대로 증가했다”며 “무분별하게 재정을 동원할 경우 일본처럼 순식간에 재정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기적인 부양보다는 구조개혁과 신성장동력 발굴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한다는 시각이다.
보호무역주의 확산, 내수심리 부진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두 정책당국의 역할 논란이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구조개혁을 저마다 핵심으로 꼽지만 그 성과에 대해선 이견도 많다. 전날 이 총재는 “4대 구조개혁 가운데 일부는 이해관계자 간 상충, 대내외 여건으로 원활하지 못했다”며 “정부가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미/이상열/황정수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