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브렉시트 앞날 가를 다섯 가지 '경우의 수'

브렉시트를 대비하라
조명진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56 / 1만5000원

조명진 EU집행위 안보자문역…브렉시트 향방 시나리오 제시

내각 갈등·탈퇴협상 난항 등 영국 내부문제로 번복 가능성
연쇄테러·회원국 추가 탈퇴 땐 예정된 수순대로 EU 나올 것
AP연합뉴스
2016년 6월23일 영국의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 결과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대부분 부결되리라 믿었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안이 51.9%의 지지를 받으며 브렉시트가 결정된 것이다. 이것은 유럽 통합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며, 향후 유럽과 미국을 넘어 세계 경제·안보·정치 분야에 파상적으로 영향을 끼칠 중차대한 현안이다.

브렉시트 결정 후 여러 충격적인 뉴스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브렉시트를 대비하라》의 출간은 반가운 소식이다. 브렉시트 찬반 투표를 한 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발간된 이 책은 EU 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을 맡고 있는 저자 조명진 박사의 순발력과 평소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조 박사는 30년이 넘게 유럽에서 공신력 높은 외신들을 통해 국제 안보와 미래 전략에 관한 논문과 칼럼을 발표해온 유럽 전문가이자 전략가다. 12년째 한국인 최초로 EU 집행위원회에서 국제 안보와 방산 협력에 관한 자문을 맡고 있다. 유럽통인 그에게서 듣는 브렉시트 이야기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EU에 소속돼 일하는 저자만이 소개할 수 있는 EU 내부 자료와 그가 현지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획득한 ‘소프트 인포메이션’을 가미해 브렉시트의 시작과 파장, 미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많은 전문가가 간과하는 영국 내부 문제를 짚어내는 예리한 분석력과 유럽을 꿰뚫어 보는 정교한 통찰력도 관찰할 수 있다.브렉시트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다루는 1장의 ‘정체성 위기, 영국인은 유럽인인가?’라는 물음에 유럽 역사에 능통한 저자는 영국의 전 총리들이 영국과 유럽을 분리해 발언한 사실이나, 프랑스 전쟁 기간에 영국인이 유럽에 적대감을 품게 된 이야기들을 흥미롭고 상세하게 소개한다.

브렉시트를 촉발한 유럽 난민 사태에 대한 상세한 분석도 곁들였다. 브렉시트 이후 일련의 진행 상황을 다룬 2장 ‘브렉시트가 가져온 거대한 파장’에서는 세계화 속에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인 국수주의와 고립주의의 의미가 국제관계에 어떤 파장으로 이어질지 큰 그림을 보여준다.

브렉시트가 그대로 진행될지 또는 번복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은 독창적이다. 저자는 영국 메이 내각의 불협화음과 EU 지도부와의 탈퇴 협상 난항, 메이 총리가 주장한 ‘폐지 대장전’의 의회 통과 실패 가능성 등 영국 내부의 문제를 들어 2차 국민투표가 치러져 브렉시트가 번복되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이어 브렉시트가 이뤄지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첫째는 브렉시트의 데드라인인 2019년 4월 이전에 런던이나 로마, 바르셀로나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연쇄 테러가 자행될 경우다. 영국 정부는 단일시장 접근보다 국경 통제권 강화에 무게를 두고 예정된 수순을 밟을 것이다. 둘째는 브렉시트 결정 여파로 EU를 추가로 탈퇴하는 회원국들이 나와 유럽 통합의 큰 축이 흔들리는 경우다. 영국 여론은 브렉시트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영국이 단독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을 것이다.

브렉시트로 인한 미래를 신양극체제의 틀에서 다루는 3장도 주목할 만하다. 여타 지역 연구 전문가와 차별되는 저자의 핵심 역량은 세계 경제와 금융 문제를 안보정책 차원에서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인데, 이번 책에도 이 점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어 저자는 브렉시트가 한국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4장에서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국이 실질적으로 대비해야 할 외환 전략 등 구체적인 경제정책 제안과 함께 통일을 포함한 외교안보정책의 방향까지 제시한다.특히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지론을 반박하며 한반도 통일과 결부된 정책들을 제안한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제조업의 일자리 감소를 예측하고 서비스산업 위주의 구조조정을 제안했다. 저자는 이와 달리 국제경쟁력 있는 제조업의 기반 없이는 한국의 지속적 경제 성장이 어려우며, 금융업과 서비스업 비중이 큰 미국과 영국의 앵글로색슨식 경제모델이 아니라 의류, 제약, 중장비 부문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보이는 독일과 스웨덴식 경제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세수 확충을 주장한 스티글리츠 교수와 달리 세출은 생산성과 잠재성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유럽에서 경험이 많은 저자인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적 시각을 비틀어 또 다른 국면의 정책을 제시하는 점이 새롭다.

급변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국제 정세에서 고립된 이 땅의 정국을 어떻게 일깨워 갈 것인가. 지금 여기 우리에게 필요한 근본적인 물음과 고민에 관해 이 책은 새로운 방식으로 주의를 환기해 준다.

손욱 <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