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소비시장 새 키워드 '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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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파탈마케팅업계에서는 ‘집토끼’ ‘산토끼’란 용어를 쓴다. 집토끼는 기존 소비자, 산토끼는 제품을 쓰지 않는 층을 말한다. 산토끼를 잡아야 시장이 급속히 커진다. 화장품과 패션은 40~50대 남성, 명품 시계는 여성, 홍삼은 20~30대가 산토끼에 해당한다. 이들이 소비를 시작하자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수제화 시장의 30대도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 젊은이는 스스로를 인정하기 위해, 40~50대는 남아 있는 인생 2막을 위해 자신에게 투자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딱딱한 사회 분위기와 고령화라는 요인이 소비시장에서 ‘자존감’이라는 키워드를 밀어올리고 있다.
부장님, 왜 그리 멋있어요?
자존감 찾기 시작한 40~50대 남성
나만의 패션…정장·청바지 직접 골라
피부관리숍 찾고 눈썹 시술 받기도
한 대기업 임원인 최모씨는 얼마 전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성형외과에서 눈썹 반영구 시술을 받았다. 눈썹이 연한 그는 평소 인상이 유약해 보이는 것 같아 고민이었다. 성형외과는 아내가 추천했다. 그는 “임원 가운데 눈썹 반영구 시술을 받은 사람이 꽤 많다”며 “예전에는 미용 시술에 거부감이 컸지만 이제는 관리하는 남자가 더 멋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화점·홈쇼핑의 ‘큰손’
현대백화점 경기 판교점 남성정장 갤럭시 매장에는 ‘갤럭시 IT라운지’가 있다. 슈트 등 패션 제품과 함께 갤럭시 기어 스마트폰 등 삼성전자의 전자기기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선 스마트 거울을 통해 가상으로 옷을 입어볼 수 있다. 옷을 고르면 어울리는 넥타이를 추천해준다. 갤럭시 슈트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40~50대 중년 남성의 방문을 늘리기 위해 체험형 매장으로 꾸몄다고 현대백화점 측은 설명했다.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남성들이 IT 기기에 관심이 많다 보니 옷을 살 겸 흥미를 갖고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많다”고 했다. 현대백화점에선 2013년 27%였던 남성 방문객 비중이 지난해 30%를 넘어섰다. 방문객 3명 중 1명은 남성이라는 얘기다.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는 남성도 늘었다. CJ오쇼핑은 작년 20.8%였던 남성 매출 비중이 올해 22.2%로 높아졌다. 남성 소비자의 주문건수는 2년 새 21만6000건 증가했다. 올해 이들이 가장 많이 구입한 제품 다섯 가지 중 두 가지가 청바지와 슈트다. CJ오쇼핑 관계자는 “부인이 사준 대로 입기보다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직접 구입하는 남성 소비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전체 패션 소비자 중 40~50대 남성 비중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남성복을 구매하는 소비자 중 40대 비중은 2008년 21.8%에서 지난해 28.6%로 늘었다. 50대 비중은 19.4%에서 21.2%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20대 소비자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
성형외과 시술도 기꺼이중년 남성들은 미용업계에서도 큰손으로 떠올랐다. 화장품을 직접 고르고 피부관리숍이나 피부과를 찾는다. 올 3분기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서 보습 화장품을 구입한 50대 남성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84% 늘었다. 비씨카드 빅데이터 센터에 따르면 지난 4년간 40~50대 소비자의 피부 관련 카드 사용액은 35.3% 증가했다. 미용 관련 카드 사용액도 같은 기간 41.7% 늘었다.
비씨카드 측은 이마 주름과 처진 눈꺼풀을 개선하는 성형외과 시술 결제액도 많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필러와 보톡스 시술을 받는 40~50대 남성이 늘었다”며 “학부모 모임에 가기 전 시술을 받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