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꿈틀 대는 용의 등에 올라탄 신선처럼…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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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E6
우리가 모르는 대만 이야기대만 동부는 낯설다. 대만에 한두 번 다녀온 사람들도 동부를 아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린다. 동부는 화롄(花蓮)에서 타이동(台東)까지 300㎞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태평양 바다와 웅장한 대리석 협곡을 품고 있는 화동 지역을 이른다. 아미족, 타이야족 등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 대만의 뒤뜰이라 불리는 동부로 떠났다.
대리석만 팔아도 3년은 먹고살 수 있다는
원주민 도시 화롄
창자처럼 빙빙 돌고 강물같이
굽이 도는 기묘한 절경 타이루거 협곡
대만의 뒤뜰, 동부
싼셴타이, 석양이 아름다운 구름다리…
신선이 노닐던 전설의 산책로
타이동, 고개만 돌리면 숲과 바다…
21㎞ 자전거 도로 타고 시내 일주
대리석과 원주민이 환영하는 화롄타이베이역에서 화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대리석 협곡으로 유명한 타이루거(太魯閣)에 가기 위해서였다. 화롄은 타이루거로 가는 관문이자 대리석 주산지다. 대만을 건국한 장제스 총통이 “화롄의 대리석만 팔아도 3년은 먹고살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을 정도로 대리석은 질이 좋고 양도 많다. 어느새 열차 창 너머로 화동 해안이 펼쳐졌다. 섬나라 대만에서도 화롄에서 타이동을 잇는 176㎞의 화동 해안은 해안선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푸른 하늘과 그보다 더 푸른 바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에 눈이 맑아졌다.
화롄 기차역을 나서자 하얀 대리석 보도블록이 시선을 끌었다. 대리석 본고장답게 거리의 벤치마저 대리석이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원주민의 거리 공연도 이색적이었다. 여기서 원주민이란 한족(漢族)이 대만으로 이전하기 전부터 살던 말레이계 소수민족을 말한다. 인구 11만명의 화롄에는 아미족(阿美族), 타이야족(泰雅族)등 8000여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는데 아미족이 대부분이다. 아미족은 지금도 고유의 춤과 노래, 축제 등 전통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타이완의 유명 가수 중에 아미족이 유난히 많다고 한다.자연이 빚은 절경, 타이루거 협곡
노란 택시를 타고 타이루거 입구에 이르렀다. 타이루거는 타이야족 추장 타로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문을 지나면 중앙 산맥에서 태평양으로 흐르는 격류가 만들어 낸 대리석 협곡이 펼쳐질 터였다. 해발고도 3000m, 길이 20㎞에 이르는 기암절벽 사이로 고속도로가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현지인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중부고속도로를 누비기도 하지만, 여행객들은 주로 택시 투어를 이용한다. 택시 투어란 기사가 가이드를 겸하면서 타이루거 협곡을 구석구석 안내해 주는 1일 투어를 말한다.
타이루거를 지나면 사카당 보도다. 아타얄족 말로 ‘어금니’란 뜻을 지닌 사카당 보도는 자연적으로 생긴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삽과 곡괭이로 파내려가 넓게 만든 것이다. 원래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길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일본군들이 원주민을 감시하기 위해 보다 넓게 만들었다고 한다. 걷다가 위를 올려다보면 대리석 협곡이 펼쳐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강이 흘렀다.“여기서는 안전모를 써야 해요! 머리 위로 돌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택시 기사가 건네주는 안전모를 쓰고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을 가릴 듯 좁은 절벽이 이어졌다. 자세히 보니 하얀 빗살무늬 절벽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침식 작용으로 난 구멍인데 봄마다 제비가 와 집을 지어서 이 구간은 제비집이란 뜻의 옌즈커우라 불린다 했다. 아홉 구비라는 뜻의 구곡동에 접어들자 아흔아홉 구비가 아닌가 싶을 만큼 구불구불한 터널이 이어졌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깎아지른 절벽의 아찔함이 고스란히 와 닿았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는 물이 흘렀다. 타이루거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곳답게 절경의 연속이었다. 터널 끝에 다다랐을 때 내벽에 새겨진 글귀가 보였다.‘창자처럼 빙빙 돌아, 강물같이 굽이 돌아 인간은 마침내 하늘을 능가하는 기묘한 형세를 만들었다.’ 그제야 4년간 매일 5000명이 넘는 인부들이 끈 하나에 매달려 곡괭이로 대리석을 뚫었을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 터널 공사 중 212명이 목숨을 잃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사당 ‘창춘츠’를 만들었다. 깎아지른 절벽에 세워진 사당 아래로는 폭포가 아득하게 흘러내린다.
어느새 절벽이 은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흰 대리석이 유난히 많은 협곡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빨간 다리와 정자가 놓여 있었다. 빨간 다리를 건너 흰 대리석 기둥에 빨간 지붕을 씌운 정자에 올랐다. 삼라만상을 빨아들일 듯 끝없이 펼쳐진 협곡에서 불어온 바람이 살포시 어깨를 감쌌다. 마치 먼 길을 돌아 어머니 품에 돌아온 자식을 감싸듯. 그러고 보니 정자 이름이 ‘자애로운 어머니’란 뜻의 ‘츠무팅(慈母停)’이었다.
바다와 숲에 안긴 소도시, 타이동
화롄에서 기차로 두 시간 반만 가면 타이동이 나온다. 타이동은 타이베이나 가오슝 등 다른 도시에 비해 개발이 더뎌 풍요로운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도심에서도 고개를 돌리면 숲이요 바다다. 여기에 자전거 도로 21㎞가 시내를 빙 두른다.‘타이동에 가면 꼭 자전거를 타세요’라고 한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곳곳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해안을 따라 달릴 수 있는 해변 공원에서 시작해 삼림 공원을 한 바퀴 돈 뒤 다시 해변 공원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해안 길을 달리는 내내 태평양에서 불어온 바람이 스쳤다. ‘아, 상쾌하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이었다. 삼림 공원에 이르자 한국 소나무와 비슷한데 키도 더 크고 잎도 더 긴 호주 소나무가 빽빽한 숲길이 펼쳐졌다. 길이 끝나갈 즈음 그림 같은 호수가 나타났다. 드문드문 운동 중인 현지인을 제외하면 여행객이 많지 않아 한적하고 고요했다. 대만이 아니라 핀란드 같은 북유럽 어느 나라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타이동의 양대 명물은 싼셴타이(三仙台)와 샤오예류(小野柳)다. 싼셴타이는 작은 섬과 해안을 잇는 아치형 다리로 중국 8대 신선 중 여동빈, 이철괴, 하선고 3명이 다녀갔다고 해서 싼셴타이라 이름 붙여졌다. 샤오예류는 화성을 옮겨놓은 듯 독특함 암석이 늘어선 지질공원이다. 타이베이 인근 ‘예류의 축소판’이라고 해서 작은 예류라는 의미의 샤오예류라고 불린다. 타이동 중심에서 싼셴타이까지 갔다가 샤오예류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푸강 항구에 들러 신선한 해산물을 맛보면 반나절 여행 코스가 완성된다.
싼셴타이는 사진으로 본 모습보다 더 웅장하게 다가왔다.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이 어려울 만큼 푸른 풍경이 펼쳐지고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모습의 여덟 개의 아치는 한 편의 그림같다. 아치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바다를 건너는 기분은 마치 용을 타고 바다 위를 건너는 듯했다. 다리 위에서 바다를 보니 거대한 파도가 부채처럼 펼쳐졌다 사라졌다. 해변의 검은 돌은 파도와 부딪혀 경쾌한 소리를 냈다.
샤오예류도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해변을 따라 두부, 산호, 버섯, 낙타, 벌집 바위등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오래전 지각운동으로 사암층이 솟아 오른 뒤 파도와 바람의 침식과 풍화가 반복돼 생겨난 기이한 바위들이다. 마침 날이 맑아 뤼다오(綠島)가 선명하게 보였다. 저녁 무렵 푸강 항구의 아담한 식당에 앉아 조개 볶음, 새우 찜, 회 등 그날 잡은 신선한 해산물을 맛보노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렇게 눈과 입이 즐거운 타이동의 밤이 깊어갔다.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여행 메모
한국에서 대만은 약 2시간30분 거리다. 인천은 물론 김포 부산 대구에서도 타이베이까지 대한한공, 아시아나, 티웨이, 제주항공, 이스타 등 직항이 많다. 타이베이에서 화롄이나 타이동으로 가려면 타이베이역에서 기차를 타면 된다. 타이베이 기차역에서 화롄까지는 하루 30편의 열차가 운행하며 세 시간 걸린다. 화롄에서 타이동도 세 시간 정도 걸리며 하루 19편의 기차가 있다. 주말엔 홈페이지(railway.gov.tw)에서 예매하는 편이 안전하다. 타이동 시내에서 싼쏀타이로 이동할 때는 하오싱(好行) 버스를 이용하면 원하는 곳에 내렸다 탈 수 있다. 단 배차 간격이 넓으니 관광 안내센터나 버스 기사에게 시간표를 받아 확인하고 이동하는 게 좋다. 시차는 한국보다 한 시간 늦고 통화는 타이완달러(1TWD=37.23원)를 쓴다.